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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미소 Sep 16. 2021

누군가는  지옥이었을


드라마 D.P를 보았다.

우연하게 접한 넷플릭스에서 본 드라마, 퇴근을 해서 새벽 2시까지 눈이 빨갛도록 봤다.

내가 드라마에 이렇게 빠져보기는 근 10년 들어 처음 있는 일이다.

헌병대 D.P 무슨 단어의 약자인지는 모르지만 탈영병을 찾아 부대로 데리고 오는 일을 하는 장병의 이야기다.


분노와 저리도록 아픈 가슴, 그나마 그 이는 감정을 다독여 주는 건 그들 사이의 신뢰와 정이었다.

여자라서 군대 생활에 대해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 충격이었는지도 모른다.

스물여덟 아들은 특별한 어려움 없이 군대생활을 마치고 왔다. 천성이 온순하고 품성이 바른 아이, 고등학교 다닐 때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한 번 붙어 싸워보라는 내 제의에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때리느냐"라던 아이의 말이 나를 반성하게 했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 그런 누군가의 아들이 있었다.

운동을 하다가 사람 때리는 게 싫어 그만두었다는 일등병

때릴 줄 알았지만 때리기 위해 참아왔던 사람

그 참음이 넘쳤을 때는 자신조차도 막지 못했던 나락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을, 또 다른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 사람 취급도 안 하는 모습을 보았다

피가 나도록 때리고, 괴롭히고, 조롱하고, 강한 사람을 편들어 다 같이 몰아세우고,

그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척 강한 멘털의 소유자여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당하는 사람들은 모두 심성이 곱고 약하고 반듯한 사람들이라는 거다.


나의 직장 초년 때가 생각났다.

병원 원무과, 그곳에서 나는 내 인생 최악의 사람을 만났다.

이유도 없이 미워하고, 날마다 야단치고, 따돌리고, 그것도 모자라 배워야 할 일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웃는다고 몰아세우고, 빨리 걷는다고 뭐라고 하고, 어린애가 연애만 한다고 남자 친구에게서 전화가 오면

뱁새눈을 뜨고 쳐다보곤 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한 일도 내 잘못으로 몰아세우고, 결국 나는 반항 한 번도 하지 못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3년 만에 그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직도 나는 그녀의 꿈을 꾼다.

못된 얼굴로 내 이름을 부르며 몰아세우는 꿈, 그때마다 나는 가위에 눌려 비명을 지른다.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요즘 심심찮게 직장 내 따돌림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뉴스를 볼 때마다 나는 나에게 칭찬한다.

잘 참았다고, 잘 견뎠다고, 그래서 지금이 있다고..


드라마를 보는 내내 아들의 얼굴이 화면 위에 겹쳤다.

드라마 속 괴롭힘을 당하는 배우의 얼굴이 곧 내 아들의 얼굴이었다. 분노가 일었고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욕이 나오고 있었다.

군대의 관습이라, 수직관계의 특성이라, 외면하며 지내온 같은 동료 군인들

그들 속에 누군가는 지옥 같은 날을 보냈을 것이다.


최근 들어 군대 내 폭력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나는 아직도 불안하다.

어디든 누군가를 괴롭히며 희열을 느끼는 한 사람 때문에 심성 곱고, 착하고, 또 여린 많은 사람들이 지옥 같은 날을 보낼 것이다.


지금도 어디에 선가는 동기들의 따돌림, 직장 내 따돌림, 태움으로 인해 누군가는 생과 사의 경계를 매 시간 오고 갈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일,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분명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폭력과 왕따가 없는 친절과 진정한 미소가 오가는 세상을 오늘도 나는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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