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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미소 Jan 13. 2023

누군가의 한 마디가 위로가 될 때

형체도 없는 목소리가 아침을 얼룩으로 물들였다

고운 빛깔이 아닌 먹물 같은 얼룩

찰나에 배어들어 지울 수도 없는 얼룩

사람의 말 한마디가 그렇게 하루의 시작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아침을 먹는 일도, 거울을 보고 파이팅을 외치는 일도 생략한 아침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는 반려견 초롱이에게도

다녀오겠냐는 상냥한 인사를 하지 못했다


별것 아니라 치부할 수 있지만 

치부할 수 없는 목소리, 언어

단어 하나하나가 가슴을 콕콕 찔러댄다

언어도 바늘도 형체가 없다


밤새 비가 왔고, 또 지금도 비가 오는 거리는 질퍽거렸다

차 안 가득 낀 성애가 시야를 막고 있다

이미 틀어진 심성이 자꾸 아귀를 더 틀고 있다

커브길에 비상깜빡이를 켜고 서 있는 차, 

깜빡이도 없이 차로를 변경하는 차,

지나려고 막 다가가는데 빨간 불로 바뀌는 신호등,

무엇하나 제대로 진행되는 게 없다


얼룩은 처음에는 눈으로 스며들어 심정으로 배어들더니 뇌리까지 점령한다

온통 얼룩이다

칙칙하고 답답한 얼룩, 얼룩, 얼룩

차라리 더 얼룩 질 수 없도록 까맣게 칠해버릴까?

겁 많은 나는 결코 그러지 못하리라는 걸 안다


습관처럼 켜놓았던 FM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도 얼룩을 지워주진 못했다


음악이 끝나고 DJ의 농담에 난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사실 너무 재미있었는데 그 내용을 옮기지도 못할 정도로 내용을 잊었다

지하철 안내멘트를 잘못 들으면... 하는 내용이었다.

누군가 재미있게 만든 문장을 DJ가 익살스럽게 읽었고

자신도 너무 우스웠는지 넘어갈 정도로 깔깔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스피커를 뚫고 나와 나의 배를 간지렸다

정확하게 내가 가장 약한 웃음보를 건드려

순간 나도 빵 터지고 말았다

스피커에서 터지는 웃음소리를 뱃속에 주워 담아 그 배가 불룩하게 커지고 

더 이상 웃음이 못 들어가 아프도록 혼자 웃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얼룩이 사라졌다.

어떤 세재도 필요 없이 웃음이 얼룩을 지웠다

하얗게 지우진 않았지만 그 얼룩 정도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였다


생각은 정말 얇디얇은 종이 같아서

바람에 팔랑 한 쪽만 뒤엎어도 천지차이다

팔랑귀가 가장 고마울 때


지금은 얼룩이 지워졌다

어떤 빛깔의 얼룩인지도 모른다

단순한 내가 단순하게 지운 얼룩

그것은 웃음이었다. 누군가가 던진 한마디에

값싸게 넘어간 내 웃음보..


***글을 너무 오래 안 썼다. 습관이 되려 억지로 써본다. 글을 쓰는 순간은 내게 늘 힐링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힐링을 잊었다. 삼천포로 빠지는 바람에...

다시 원 길로 들어섰다. 너무 급하지 않게 자박자박 걸어만 가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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