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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Oct 07. 2016

[M.M.C] 영화 '그물'

내 마음의 금기 (스포 포함)

Madam Mystery Cabinet 외전3     

 

  그물

- 내 마음의 금기


 이십대의 어느 해 12월 31일 선배와 후배와 나는 종로 5가 즈음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공연을 보고 술을 마시고 해사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택시를 잡으러 훠이훠이 손 까지 저으며 서 있자니 택시 한 대가 섰다.

허리 숙여 창 앞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는


“ 아저씨, 평양이요~~~~ ” 했다.

택시는 그냥 갔다.

뒤에 다른 택시가 와서 섰다.

“ 어디 가세요?”

“ 평양이요~~~” 했다.


  그랬다.      

  나는 이십 대였고, 교를 졸업했고, 직장에 다녔다. 그래도 답답했다.

나는 고려의 고터인 '개성'에도, 고구려의 옛터전이었던  '평양'에도 가보고 싶었다.

역사책 속에만 존재하는 오래된 내 조상들의 터전이 보고 싶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영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라 되어있다. 그게 그때도 변함없었다. 국민국가의 영토가 아닌가? 그런데 택시기사는 어이없어했고, 혹자는 난감해했다.      

  

  삼십 대의 어느 날, 식당에서 김칫국물 여기저기 튄  신문지면. 한 편의 시가 눈에 띄었다.


하노이 - 서울 시편

序: 大寒

                                                 김정환 

 진눈깨비 내리는 길을 걷는다.

 화사드*는 화려하지만 70년대

 박정희 없는 경제개발의

 뒷골목을 걷는다

 여름 장마 냄새 찌든 지하 생맥주집

 삶은 계란 구멍가게와 노래방의

 낙후한 네온사인이 신생하는

 키 낮은 살림집과 서비스업종의

 음습한 경계를 걷는다 진눈깨비 내

리고

 회고는  음탕

 하지. 김일성 없는 평양도 걷는다

* facade: 건물 정면 외관     

 

  평양은 상징이다.

전쟁과 분단으로 상실한 수많은 것들의 상징.

부모와 아내와 아들을, 역사와 철학과 사실을, 산과 강과 바다와 길을, 사색과 상념과 꿈을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 없이 찾은 극장의 어느 영화에서 배우 양동근은 열심히 뛰며 - 그는 형사 역으로 용의자를 쫓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 아마도 저 놈은 차두리보다 빠를 것이다. 확실히 저 놈은 차두리 보다 빠르고 멀리 뛴다. 난 대한민국 형사다. 난 한 번도 저 놈들 보다 앞장서서 달려본 적이 없다. 뛰어봤자다. 아무리 날쌔고 빨라도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어림도 없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으론 60만 대군이 버티고 서있다. 뛰어봤자다. ”     - 영화 [와일드카드] 중에서

 

  혀를 찼다.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갇혀 있다.

관객들은 아마 나를 포함해서 그 독백의 장면에서 웃었을 것이다. 한편으론 든든한 거다. 쫓기는 용의자는 갈 데가 없는 것이다. 바다와 60만 인민군이 그를 막을 테니.      

  

  갇혀있고, 막혀있으며 끊어진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꿈도 꾸다가 멈추는 거다.

아이들은 편협과 부조리와 금기의 세계관을 암기하고, 편향과 억지와 날조의 역사를 배운다.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된 성인의 어느 날에도 우리의 시선은 불안하고 흔들린다.  


 한반도는 바다로도 산으로도 막혀 있지 않은데 사람들은 선을 긋고 서로 넘어오는 것을 금한다. 그 사이 비무장지대가 있고 판문점이 있고 심지어 흐르는 물에도 금이 있었다.

 

    2016년 10월 영화 ‘그물’을 보았다.

 


   북한의 평범한 어부 남철우.

  바다에 던져둔 그물을 걷으러 간 어느 날.

  그의 운명이 그물에 걸렸다.     


  고장 난 배 때문에 남한에 오게 된 철우.

  그는 남한의 [국가정보원]에서 조사를 받게 된다.

  영화는 철우가 남한의 정보원에서 그리고 다시 북한의 보위부에서 겪는 일주일을 담았다.


  남한에 있는 동안 철우가 만났던 사람들.

  북한 출신 이주민을 보는 여러 가지 시선들.  

  혹시 내 시선도 저 중에 있지 않았을까 싶은 부끄러운 시선들.

  철우의 감시 혹은 경호 담당을 맡은 남한 국가정보원 소속 우진.

  그의 시선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혹독한 며칠을 보내고 그는 북한으로 돌아가지만 그곳에서 다시 익숙한 일을 겪는다.

  남한의 정보원과 북한의 보위부는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카메라는 꼼짝없이 걸린 개인의 무력함을 담담하게 담았다.      

  

  눈물 나게 가슴 아팠던 장면.

  철우를 명동 한가운데 떨어뜨려야 하는 우진. (남한의 화려한 모습을 보여 철우를 귀순하게 하려는 상부의 계획에 따라.) 북한의 가족을 위해 남한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는 철우. 그는 외부로 나갈 때마다 두 눈을 꼭 감았다. 명동 거리.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우진이 눈을 감은 철우를 부축하며 걷는 장면.

음악은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게 흘렀다.

  꿈조차 ‘금’을 그어 꾸는 곳.

영화 '그물' 속 철우의 일주일은 그런 곳에 살고 있는 ‘우리’ 혹은 ‘나’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또한 1953년에서 멈춘 채, 한 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분단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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