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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Oct 28. 2016

[달.쓰.반] 40편/ 태양의 아이들이 가르쳐준 것  

영화 안경과 소설 태양의 아이들의 배경이 되는 오키나와 이야기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금요일의 리뷰 No.40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펼쳐지는 맛있는 이야기라니.

영화 <안경>의 홍보 문구를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게다가 영화 <안경>나오는 배우들, 낯이 익다.

영화 <카모메식당> 출연진들이 꽤 보인다.

<하와이언 레시피>나 <카모메 식당>을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에,

<안경>도 기대했지만, 영화는 큰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그래도 <안경>은 

일드 <리갈하이>의 주연배우인 사카이 마사토가 출연한 영화 <남극의 셰프>보다는 

버틸만한 영화였다. 안경은 졸음을 겨우 참고 볼 수 있었고, <남극의 셰프>는 보다가 결국 자버렸다.

힐링 영화라고 하는데, 영화를 보고 제대로 숙면했으니, 힐링을 하긴 한 셈이다)

다만, 개별 영화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결과일뿐이라는 것을 밝혀둔다.)


<안경>의 배경은 오키나와 섬이지만, 실제 촬영은 요론섬에서 진행되었다.

요론섬은 행정구역상으로는 가고시마현에 속해있지만 지리적으로는 오키나와에 

더 근접하여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은 곳이라고 한다.

영화를 보고, 언젠가 한번쯤 오키나와에 가보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딱 그뿐이었다. 

만약, 하이타니 겐지로의 소설 <태양의 아이들>을 읽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홍길동이 세운 율도국이라는 나라가, 오키나와일지도 모른다, 라는

가정에 대한 이야길 들어본 적이 있지만, 율도국과 오키나와의 과거 지명이었던

류쿠의 발음이 비슷해서 그런 이야기가 생긴 것인가?? 하고 무심히 넘겼다.


과거 해상무역으로 번영하였던 독립 왕국이었으나,

일본에 편입된 뒤로는 대표적인 휴양지가 된 산호섬, 

그리고 한때 미군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다는 것.

이것이 내가 오키나와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태양의 아이>라는 작품을 읽고 나서 

문득 오래전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문장이 떠올랐다.


“슬픔도 분노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러시아의 저항시인 네크라소프가 남긴 말이라 한다. 나는 ‘조국’이라는 단어를 ‘세계’로 바꾸어 보았다. 오키나와의 비극을 그 지역 사람들의 것으로만 치부하기엔 데다노후아 오키나와정 사람들과 가지야마 선생님의 가르침이 너무나 절실히 와 닿았다. 


데다노후아 오키나와정의 사람들은 뼈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모르는 척 하며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법 앞에서는 오키나와고 뭐고 없다고 당신이 말했지. 그걸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게 바로 오키나와 사람이라면 당신은 뭐라고 말하겠나? 실업률은 전국 최고, 고교 취학률은 전국 최저인데 당신들은 그런 문제에 대해 뭘 했단 말인가. 뭐, 여기서 그런 이야기는 그만두지. 하지만 지넨 기요시라는 한 소년만 해도 그의 인생 속에는 불공평한 오키나와가 하나 가득 들어차 있다는 것만은 알아주기 바라오. 당신들은 지넨 기요시라는 소년의 인생을 들여다 볼 생각이 조금도 없단 말이요? 당신들의 인생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아이의 인생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소.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모르는 사람의 인생을 아는 것이기도 한 거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솔직히 처음에는 일본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2차 대전의 비극적인 이야기’에 100% 공감을 할 수 없었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이전 작품들이 아무리 훌륭하고, 이 책 역시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에 기대어 이야기하고는 있다고는 해도, ‘히로시마 원자폭탄’, ‘고베 대공습’ 등의 역사적 사건을 작가의 시선과 동일하게 바라보기는

힘들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일본의 역사왜곡이라는 명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도 사실 의심스럽다.


그러나 책을 읽을수록 나는 총칼과 수류탄에 짓밟히고, 자결을 강요당한 사람들이 일본 본토 사람들의 총알받이로 이용당한 ‘오키나와’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가슴 한쪽이 묵직해져 옴을 느꼈다. 


비록 그 역사적 의미에서 동질의 사건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책을 읽는 내내 제주나 광주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어난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비극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그리고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기천천은 오키나와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후짱에게, 오키나와의 자연과 오키나와 아이들의 놀이를 무엇보다 먼저 정리하라고 권했다. 그것은 ‘조국’과 ‘고향’이 인간에게 과연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까닭이었다.  어느 책에서는 일본에서 가장 장수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 오키나와라고 했다. 장수의 비결로 ‘요리’가 꼽혔는데, 혈관과 뼈를 강화시켜주는 식품과 조리법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세계 최장수촌의 하나라는 오키나와에 이토록 아픈 과거가 있을 줄이야. 그들은 나라로부터, 집단 자결을 강요당했다.


  “뭘 제대로 알려면 이런 게 아주 중요해, 후짱. 아빠가 오키나와의 바다나 어릴 때 있었던 이야기를 후짱에게 하고 또 하는 게 단순히 지나간 옛 이이야기를 하는 것 같니? 데다노후아 오키나와정에 오는 사람들이 오키나와 사투리로 이야기를 한다든가 오키나와 노래를 부르는 게 그저 자기 위안을 삼으려는 것 같아?”

 알고 싶은 게 무지 많은데, 오키나와의 자연이나 놀이에 대해 먼저 정리를 해보라는 것에

불만을 품은 후짱에게 기천천이 한 말이다.


데다노후아 오키나와정 사람들이 가끔 부르는 ‘고양이 윤타’라는 노래의 가삿말은 예사롭지 않았다. 기천천은 ‘인두세에 사무친 원한의 노래’라고 소개했다. 푸성귀를 심어도 관에 공출당하고, 관리에게 혹사당해도 말 한마디 못하고, 관리들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처녀든 유부녀든 상관없이 제멋대로 끌어갔다. 끌려간 여자의 사무치는 원한을 고양이 신세에 빗대서 노래한 것이 바로 이 노래라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오키나와의 역사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다. 


 1609년 가고시마 지방의 영주였던 시마즈에게 정복되기 전까지는 ‘류큐’라는 독립 왕국이었고, 메이지 유신 이후 오키나와 현이 되었지만, 1945년 미군에 점령된 뒤에는 27년간 미군정의 통치를 받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되기까지 오키나와 사람들은 뿌리 깊은 상처를 가슴에 지니고 살아야 했다.


  아니,  <태양의 아이>는 말한다. 그 상처는 비단 과거의 것만이 아니라고. 일본 본토인들의 지역적 차별은 아직도 오키나와 사람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있다고. 

일본인도, 미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오키나와인으로 당해야 했던 수많은 차별들.  


오키나와의 비극과 같은 강자가 약자의 인권을 말살하고 유린하는 잔인무도한 일들이 비단 과거에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책장을 덮은 나를 더욱 슬프게 했고, 분노케 했다. 


현재 우리 사회를 슬픔과 경악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국민들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수많은 ‘만행’들은 ‘자신의 가슴에 남이 살게 할 자리를 주지 않기 사람들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작가는 후짱과 데다노후아 오키나와 사람들의 말을 빌려 ‘좋은 사람일수록 이기적인 인간이 될 수 없으니까 쓰라리고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후짱은 꼭 알아야 할 역사와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고, 부모님과 오키나와 사람들의 아픈 과거를 알아가면서 진정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작가는 서문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됨의 괴로움을 진실로 고민하는 사람이 진정한 인간이 된다’고 말한다. 데다노후아란 ‘태양의 아이’란 뜻이라고 한다. 태양, 그것은 희망의 상징 아닌가.


 후짱과 그의 가족, 친구들은 진정한 희망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 후짱과 엄마는 전쟁의 상처로 깊은 병을 앓게 된 아빠를 정성스레 돌보았고, 기천천, 쇼키치, 깅아저씨, 로쿠아저씨는 가슴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쾌활하게 살아간다. 


기요시는 엄마의 가출과 누나의 자살로 방황하지만, 후짱과 오키나와정 사람들의 진심에 감동하여, 마음의 빗장을 풀고 타인의 아픔을 들여다보게 된다. 후짱과 기요시, 이 두 태양의 아이들은 독자에게 시대의 아픔과, 아픔을 하나로 묶는 뜨거운 인간애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이 아이들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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