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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Dec 02. 2016

[달.쓰.반] 46편/이희주 <환상통>

제5회 문학동네 대학 소설 수상작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금요일의 리뷰 No.46

영화 <성월동화> 스틸컷

홍콩 침사추이에 있는 스타의 거리에 갔을 때,

한 여자가 장국영의 이름을 보고 꿇어앉더니

꽃다발을 바치며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그녀는 

장국영의 이름에 자신의 손을 포개더니 

갑자기 환하게 웃었다. 

방금전까지 마치 세상 무너진 냥 슬피 울던 여자가 

갑자기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웃었다. 

이희주의 <환상통>을 읽으면서 왜 그때의 일이 떠올랐을까?

장국영은 홍콩의 그녀에게는 아이돌, 우상이었을 것이다.


최근 읽은 소설의 화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씨발, 죽어도 좋아"


<환상통>은 아이돌의 팬덤 문화에 관한 이야기다.

1부에는 자신의 아이돌 덕질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하는

화자M이 나온다. 


처음엔 시큰둥하게 읽었다. 

솔직히 아이돌엔 큰 관심이 없었다. 

가까운 지인이 올해 초 화제를 모은 <프로듀스 101>에 빠져

소위 영업을 했을 때도, 큰 재미를 느끼진 못해

한두번 보다 말았다.


학교 다닐 땐, 좋아했던 척을 했던 것 같다.

<환상통>에도 그런 구절이 있다.


"아니, 난 학교 다닐 때만 그러고 말았지. 그때도 내가 딱히 누굴 엄청 좋아해서 그랬던 게 아니라, 

응. 

그때 반 애들이 다, 진짜로 한 스무 명쯤은 한 그룹을 좋아해거든. 거기서 나만 안 좋아하기도 뭐하고 

또 보다보니까 매력도 있고 그래서 좋아했지."


반 아이들이 누굴 좋아해? 라고 물으면, 대답을 하긴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몇번 척을 했던 게 다였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당신은 평생 이정도로 사랑하는 감정을 알지 못할거야'

라고 읊조리는 화자에게 어느덧 마음을 주게 되었다. 


귀신 

내가 되고 싶은 것. 보이지 않게 너의 곁을 통과할 수 있다.


버릇

너의 경우는 입술을 깨무는 것. 그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너의 고귀한 입술 대신, 나의 천한 발을 물어주렴.'


씨발

극상의 희열과 혼동을 표현하는 말. 보통 무의식 중에 발화됨.


싱싱하다.

'싱싱하다'는 말은 거짓이다. 그것은 죽어버린 것에 가까운 표현.

혹은 죽기 전의 상태. 갓 딴 오이나 상추, 사과에나 어울리는 말.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넣을 때, 칼날이나 막 등뼈를 스쳐간 생선을 

입에 넣을 때나 어울리는 말. 


아름답다.

정확하나 남용되는 말. 사용을 자제할 것을 권장.


소설 속 화자는 자신의 애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사전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기록한다. 화자는 말한다. 사랑하기 전과 후의 언어과 같을 리 없다고.


1부의 화자M은 탈덕을 하고, 

2부엔 사생팬 만옥이, 3부엔 민규가 화자로 등장한다. 

민규는 M과 만옥이 사랑했던 민규와 이름이 같다.


하지만 나는 2부와 3부보다 1부를 더 집중하면서 읽었다.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어째서 나는 사랑하길 포기한 걸까?

기다림에 지쳐서? 아니다. 나는 기다림이 좋았다. 사랑한다는 것은 곧 기다림이었으므로

그것은 언제나 달콤했다. 아니, 그렇게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나는 그들을 알게 된 이후 매 순간이 기다림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문장을 쓰며 그 순간을 간신히 버틴 것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나는 고통 때문에 사랑하는 것을 포기했던 걸까?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나는 고통이 좋았고, 어떤 면에선 그것을 자발적으로 원했던 사람이었다.

불확실한 고통이 아무 것도 아닌 시간보다 낫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 이희주 <환상통> 중에서 


때로는 간신히 버티기 위해, 문장을 쓴다.

매순간 기다림의 연속. 달콤하지만 고통스러운 순간들.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기록하려는 화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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