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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Feb 08. 2017

[M.M.C] 38편/난징의 악마/모 헤이더

Madam Mystery Cabinet No.38     

난징의 악마

모 헤이더 장편소설최필원 옮김 

 

 도서관 서고를 지나다 보면 가끔 그런 때가 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내 걸음을 멈추는 때. 혹시라도 무시하고 지나치면 뒤통수가 서늘해지는 때. 

『난징의 악마』를 만났을 때가 바로 그랬다.      


  난징(南京). 양쯔강 하류 비옥한 토양과 온화한 기후를 지닌 중국의 오래된 고도(古都)

  황허강 중류의 장안(長安)만큼은 아니지만 난징이 어디인가? 신석기시대 벼농사의 발상지이자 역사 시대에는 저 삼국시대 손권이 세운 ‘오’(吳) 나라의 수도. 이후 동진(東晉)과 남조(南朝)라 일컬어지는 송, 제, 양, 진의 수도였다. 그리고 약 300년 동안 명(明)의 수도로 왕조의 흥망을 함께 보냈다. 이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연을 간직했을까?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유물과 유적을 남겼을까? 너무도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난징’하면 떠오르는 것은 ‘대학살’이다. 

 

  ‘난징 대학살’

  그래서였다. 책장에 꽂힌 『난징의 악마』를 보는 순간 참혹한 현대사가 떠올랐다. 지나칠 수 없었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자행된 만행에 대해서는 대략 알고 있었다. 그랬지만 한반도 밖에서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는 솔직히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곳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는 물론 동남아까지 제국주의 일본이 지나간 자리마다 참담한 역사가 넘쳤다. ‘난징’ 역시 그런 곳 중 하나라고만 여겼다.  


  스릴러와 미스터리 형식에 담아낸 ‘난징 대학살’

  이야기는 1990년, 영국 여자 그레이가 동경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이상하다. 어린 시절 우연히 보게 된 책. 그 책에 묘사된 1937년 난징의 모습.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 상상에서 조차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잔혹한 행위들.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세상에 그런 일은 없다고 말했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했다. 악마도 그런 짖은 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레이는 미친 것이 확실했다. 그녀가 보았다는 책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그 존재하지 않는 책과 책의 내용을 증명하기 위해 그녀의 모든 시간을 썼다. 영국에서 일본까지 날아온 것도 그것 때문이다. 그녀의 말이 끔찍한 상상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 줄 사람을 만나러 온 것이다.      


  또 하나의 이야기. 책은 1937년 12월 난징, 스충밍의 일기로 시작한다. 젊고 개화된 지식인 스충밍. 자신의 조국인 중국은 미신과 악습과 무지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난징 대학교의 언어학 교수. 그런 그도 오랜 관습과 어머니의 말은 거역할 수 없었다. 온갖 미신과 과학적 근거라고는 전혀 없는 믿음을 지닌 슈진과 혼인하게 된다. 슈진은 말했다. 난징을 떠나야 한다고. 스충밍이 굳게 믿고 있는 장개석은 난징을 버릴 거라고. 스충밍은 아내의 말을 비웃었다. 장개석이 난징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조차도 그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1990년 동경. 그레이와 스충밍의 만남. 하나씩 맞춰가는 퍼즐 조각들. 서서히 드러나는 두 사람의 비밀과 사실.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 동경에서 영국 여자와 중국 노인이 펼치는 절박한 이야기.

     

  몇몇 서툴고 어색한 요소들이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이야기와 역사를 모두 잡았다. 

  그것도 인간이라는 사실이 몹시도 부끄러운 그런 사건을 가지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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