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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Feb 15. 2017

[M.M.C] 39편/ 죽지 그래/교고쿠 나츠히코

Madam Mystery Cabinet No.39     

죽지 그래

교고쿠 나쓰히코 장편소설권남희 옮김 

 

   한 사람이 죽었다. 살해당했다.

  한 사람이 길을 나섰다. '와타라이 겐야'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죽은 ‘가시마 아사미’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여섯 사람을 만난다. 

 

   첫 번째 사람, 야마자키. 

  아사미의 직장 상사. 40대인 그는 자신을 찾아온 20대의 젊은 청년이 의아하기만 했다. 다짜고짜 죽은 아사미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하는 낯선 남자. 아사미는 그저 계약직 여직원이었을 뿐이다. 무엇을 말하라는 것일까? 가정과 직장 모두에서 이리저리 차이고 지친 가장이자 부장인 나(야마자키). 아사미와의 관계는 그저 아는 사람이라고만 하는 낯선 남자에게 무슨 이야길 한단 말인가? 아니 무엇보다 할 이야기가 없다. 아사미와는 몇 번 만났고 몇 번 잠을 잤을 뿐인데. 그 보다 나는 지금 누구와 이야기할 상태가 아니다. 집에선 아내와 아들이 나를 무시한다. 직장에선 상사와 부하직원 모두 나를 업신여긴다. 

  내(야마자키) 앞에 앉은 이 남자. 와타라이가 말했다. 

  “그럼, 죽지 그래.”     

  

  두 번째 사람, 시노미야.

  아사미가 살던 집의 옆집 여자. 30대인 그녀는 계약직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오늘 잘렸다. 그렇지 않아도 살인사건이 난 집에서 이사도 못하고 회사도 잘리고 우울하기만 한데 낯선 남자가 문 앞에 서있다. 살해당한 옆집 여자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나(시노미야)는 지금껏 노력하며 살았다.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도 졸업했다. 취업 준비도 열심히 했지만 면접에서 지독한 놈을 만났다. 성적 수치심이 드는 질문을 했다. 그 후로 운 나쁘게 계약직을 전전하다 나이만 들었다. 아사미? 그냥 옆집 여자다. 좀 헤픈? 나이 든 남자나 젊은 남자나 가리지 않고 후리고 다니는? 계약직이라는 지위에도 별 불만이 없는? 생각 없는 여자. 아는 게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다. 죽어라 노력하고 있는데.

  내(시노미야) 앞에 앉은 이 남자. 겐야가 말했다.

  “그럼, 죽지 그래.”       

  

  세 번째 사람, 사쿠마. 

  아사미의 애인이자 주인(?)인 야쿠자 준조직원. 아사미가 살해당하면서 경찰이 들락거려 성가신 일이 많다. 10년 가까이 조직에 있지만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아사미가 죽으면서 상황이 더 나빠졌다. 겨우 인정받을 만한 일을 맡았는데 다 수포로 돌아갔다. 도대체가 운이 없다. 나(사쿠마)보다 멍청한 놈이 선배로 있어서 더 안 풀린다. 그런데 웬 어린놈이 찾아왔다. 죽은 아사미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아사미의 옛 남자인가 싶어 물었더니 아니란다. 그냥 아는 사이라고만. 기분 나빠, 한 대 쳤다. 맞고 나서도 아사미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한다. 아사미? 그녀는 그냥 멍청한 선배한테 물려받은 여자다. 그녀를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장례식장엘 갈 순 없었다. 살인사건이라 경찰들이 몰려있다. 성가시다. 일이 다 꼬여 버렸다.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내(사쿠마) 앞에 앉은 이 애송이 녀석이 말했다.

  “그럼, 죽지 그래.”         

  

  네 번째 사람, 가시마 나오코. 

  아사미의 엄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권유로 원치 않은 약혼을 했다. 원치 않는 아이도 낳았다. 아이가 있는 몸으로 살기 힘들었다. 결혼을 세 번이나 했지만 남편들은 다 변변치 못했다. 하나같이 지질하고 못났다. 날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잘 못됐다. 이 세상에서 젊은 여자가 아이까지 데리고 살아가기란 너무나 힘들다. 아이는? 아사미? 웬 새파란 젊은 놈이 찾아왔다. 아사미 보다 어리다. 아사미 이야길 듣고 싶다고? 아사미는 어땠냐고? 새아버지들과 잘 지냈냐고? 그랬다. 그 아이는 새아버지들과 잘 지냈다. 그래 봤자 아사미의 아버지가 아니다. 내 남편일 뿐이다. 부모 복도 없더니 남편 복도 없어서 세 번이나 결혼하고 이혼했다. 남자 운이 너무 없다. 나는 자식 복까지도 없다. 죽어버렸으니. 

  내(나오코) 앞에 앉은 젊은 녀석이 말했다. 

  “그럼, 죽지 그래.”     

  

  다섯 번째 사람, 야마시나.

  가시마 아사미 사건의 담당 팀장.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경찰 공무원으로서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도 나한테 돌아오는 것은 원망이다.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피해자 가족들이 말했다. 가족을 잃어 정신이 없는 자신들한테 묻고 또 묻고 또 묻다니? 이해한다. 그런데 동료들까지도 그런 눈초리다. 그렇게 까지 해야 하냐고? 범인을 잡아야 하지 않는가. 범인을 잡지 못하면 무능하다고 난리다. 가해자 가족은 또 어떤가? 내가 애꿎은 사람을 잡았다고 난리다. 가시마 아사미? 지금 내 앞에 앉은 이 남자는 가시마 아사미와 무슨 관계인가? 참고인 조사 때 전혀 등장하지 않은 인물이다. 내가 놓쳤을 리 없다. 나는 법을 지키고, 법을 위해 일한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경멸한다. ‘그러고도 사람이라니?’ 도대체 왜?

  내(야마시나) 앞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그럼, 죽지 그래.”     

  

  와타라이 겐야는 여섯 사람을 만난다. 

  살해당한 아사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다. 하지만 누구도 아사미 이야길 제대로 하지 않는다. 모두들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이젠 독자가 궁금하다. 겐야는 누구 인가? 아니 그 보다 나는 어떤가? 미스터리 소설을 읽다가 자꾸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겐야가 만나는 모두에게서 내가 보인다. 이런 당혹스럽다.


 마지막 여섯 번째 사람까지. 결국 그들 모두에게서 나를 보았다. 

 오직 두 사람, 죽은 아사미와 겐야만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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