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원작의 맛

컨택트 (Arrival)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엘리

by 이야기술사

※ 본문에 영화 <컨택트(Arrival)> 및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컨택트 포스터.gif


가리지 않는 잡식성이지만 그중에서도 SF 영화를 좋아한다는 점,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노미네이트 등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는 점이 이 영화를 볼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영화를 먼저 보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원작 소설을 펼쳐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원작 소설의 맛을 잘 살리는 것에 성공하기도 했고 다소 실패하기도 했다.

소설은 여자주인공인 루이즈가 딸에게 이야기하는 부분, 언어학 교수인 루이즈가 물리학자 게리(영화에서는 이안)와 외계인(헵타포드)의 언어를 해독하는 부분이 교차되며 전개된다. 영화가 원작 소설의 맛을 잘 살리는 것에 실패했다고 보는 이유 중의 하나는, 루이즈가 딸에게 이야기하는 부분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는 마치 꿈처럼 루이즈의 눈 앞에 딸의 모습이 나타나고 마치 회상처럼 딸과 나누었던 대화들이 나온다. 그것이 과거 회상인 줄로만 알았다가 "이 아이는 누구지?" 라는 루이즈의 질문에 미래의 일임을 알게 된 관객이라면, 그것이 영화의 핵심 대사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관객이라면, 제대로 본 것이다. 딸과의 기억은 과거이기도 하고 현재이기도 하고 미래이기도(영화의 핵심 주제) 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영화에서는 소설에서 나온 딸과의 기억들(다음으로 이어지는 체경에서의 사건과도 절묘하게 연결되는)이 군데군데 단절되어 조금씩만 보여질 뿐이다. 그리고 소설보다 영상화된 영화의 전개가 오히려 더 늘어진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 또한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만 했던 헵타포드들의 문장이 체경에서 시각화되는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처음과 끝이 이어진, 인과관계나 시간 순이 아니라 동시에 쓰여진 표의문자. 소설과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그들의 문장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큰 쉘의 형이상학적인 기묘함과 잘 맞아떨어지는 배경 음악 또한 절묘했다.

루이즈의 딸 한나라는 이름이 처음과 끝이 대칭된다는 점, 루이즈가 중국 장군과 만난 미래를 보고 현재를 되돌렸다는 점 또한 영화에서 추가된 부분으로 작품의 주제와 일맥상통했다.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언어학적인 가설, 즉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주장인 사피어-워프 가설 또한 영화에 잘 반영되어 있다. 루이즈는 헵타포드들의 언어를 배우면서 미래를 보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소설의 처음과 끝에 나오는 "아이를 가지고 싶어?" 라는 말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어떤 여자 코미디언이 하는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중략) "내가 자식을 여럿 낳는다고 가정해봐. 만에 하나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된 다음에 인생에서 겪은 안 좋은 일들을 모두 내 탓으로 돌리면 어떻게 하지?" 그랬더니 그 친구가 웃으면서 이러더라고. "만에 하나라니, 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농담이다. - 198쪽


딸의 죽음, 남편과의 이혼 등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의 미래를 다 알고도 기꺼이 그 삶을 그대로 받아들인 루이즈. 소설에서 나오는 저 부분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루이즈의 딸은 엄마가 자신의 죽음을 알고도 자신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원망스러울까? 혹은 엄마가 아니었으면 알지 못했을 풀 냄새, 노을이 지는 풍경, 사춘기적 감성, 그리고 아빠와 엄마의 사랑에 감사해할까?

결국 헤어지고 이렇게 힘들 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그 사람을 만나지 말 걸,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 길을 선택하지 말 걸. 난 살면서 많은 후회들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미래를 미리 알았더라면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최악을 피한다고 해서 최선의 기회가 올까? 최선과 최악, 차선과 차악의 기준은 모두 상대적이다. 내가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한들 최선을 선택할 수 있을까.

소설에 나오는 <세월의 책> 이야기에도 크게 공감했다. 내가 점을 보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점쟁이가 점을 보러 온 사람에게 내년에 결혼한다고 호언장담한다고 한들, 그 사람이 내년에 무슨 일이 있어도(죽어도)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예언 따위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대로 '예언'과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선택'은 양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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