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상):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기자 이야기

by 이야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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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상):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기자 이야기


“밥 먹어!”

지난주에 산 냉동 감자튀김을 에어프라이에 넣었다. 180도에 맞춰둔 온도를 확인하고 타이머를 10분으로 돌렸다. 연심인 아직 화장실에, 무심인 먼저 씻고 제 방에 들어갔다. 아이들의 동선을 확인하고 일단 한 번 더 소리를 질렀다.

“아침 먹으라고!”

연심이 입에 칫솔을 넣은 채로 욕실 밖으로 뛰어나왔다. 저와 함께 일어난 엄마가 벌써 아침을 다 차렸을 리 없다는 걸 확인하기 위한 것이겠지. 냉장실 문을 열다가 딸과 눈이 딱 마주쳤다. 오른 손을 들고 가볍게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녀석이 눈을 내리깔고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 위에 걸린 벽시계로 시각을 확인했다. 서둘러야 했다. 아이들 등교 시간이 9시로 변경되면서 어째 아침시간이 더 바빠졌다. 여유 있다고 기상시간을 야금야금 늦춘 내 탓이었다. 셋이서 먹으려면 감자튀김만으로는 모자랐다. 냉장실에서 꺼낸 모닝 빵은 남편이 먹고 갔는지 달랑 세 개만 남아있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어제 먹고 남은 스프 냄비가 떠올랐다. 뚜껑을 열어 보니 그대로 있었다. 남편은 스프가 있는 줄은 몰랐거나 바빠서 그냥 간 것 같았다. 가스 불을 켜고 수돗물을 한 대접 들이 부었다.

“엄마 스프 너무 싱겁다.”

연심이 빵을 입에 문채 중얼거렸다.

“양이 중요해! 일단 많잖아!”

나는 녀석의 스프 그릇으로 들어가려던 빵을 낚아채며 말했다.

“엄마! 나 감자튀김 안 먹을 건데.”

연심이 억울하다는 듯 웅얼거렸다.

빵은 딱 세 개였고 무심인 아직 제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럼 빵이랑 스프만 먹어. 오빠랑 엄마도 먹어야지. 오빠 빵 안 먹는다고 하면 네가 먹던가!”

나는 빵을 북북 찢어 내 스프에 푹 담갔다.

나더러 치사하다고 투덜거리던 연심이 제 오빠한테 빵은 먹을 거냐고 소리 질렀다. 감자튀김은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연 4일째였다. 토마토케첩도 없이 먹으려니 나도 슬슬 질렸다. 무심이 그제야 방에서 나왔다. 녀석은 욕실에서 나왔을 때와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나는 스프 그릇을 입가에 대고 마셨다. 빵은 이미 스프에 불어 형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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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름인 정말 감동 이예요.”

제 오빠를 한번 째려봐준 다음 연심이 말했다.

나는 대꾸할 마음이 없었지만 일단은 연심일 봐 주었다. 녀석이 학기 초에 아침 밥상에서 할 말이란 게 뻔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다양하나 결론은 하나일 것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것에 용기를 얻은 녀석이 말을 이었다.

“365일 중에 43일 밖에 못 논대요.”

“왜?”

나는 입에 든 빵인지 스프인지를 삼키며 겨우 한마디 던져 주었다.

“나머지는 계속 문제를 풀어야 한데요. 수학 문제집이 다섯 개나 된데요. 불쌍하죠. 나는 200일 정도는 놀 수 있는데.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에요. 뒤가 정말 감동 이예요.”

나는 그 정도에서 대화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30분인데. 얼른 서둘러야 하지 않아!”

“저 시계 7분 빨라요.”

지금까지 한 마디도 없던 무심 말했다.

얄미운 녀석. 녀석 앞에 있던 감자튀김 그릇은 어느새 텅 비어 있었다. 나는 곧바로 식탁 옆에 두었던 핸드폰으로 시각을 확인했다. 8시 23분.

“맘대로 해. 오늘도 신발 신고 준비물이 있니 없니 했다가는 사망이야.”

핸드폰을 본 김에 뉴스를 검색했다. 어제 너무 충격적인 기사를 봤더니 오늘은 무슨 기사가 떠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 기온을 대충 보고 아이들의 옷차림을 훑었다. 연심의 윗옷이 좀 얇아 보였다. 한 소리 했더니 위에 하나 더 입을 거란다. 무심인 겨울 내 입던 두꺼운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내가 저걸 언제 빨았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녀석이 워낙 옷을 깨끗이 입는 걸까? 옷이 원래 떼가 타질 않는 걸까? 아들 녀석이 딸 네미 보다 열배는 더 깔끔했다. 연심을 흘끗 보자 어제 입은 티셔츠가 벌써 얼룩덜룩했다. 소매는 보고 싶지 않았다. 무심이 먼저 일어났다. 작년 까지는 그런대로 제 동생도 기다려주고 함께 등교하기도 하더니 올 해는 뒤도 안 돌아본다. 학교가 가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둘이 같이 가면 좋으련만.

“나무심! 동생이랑 같이 가!”

커피포트에 물을 부으며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심이와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처음부터 받아 주지 말았어야했다.

“아직 안 가요.”

무심이 다시 제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오빠 방에 뭐 있냐? 방에서 뭐 하는 거래?”

내가 물었다.

녀석이 아침 내내 방에서 뭘 하는지 정말 궁금했다. 그 바람에 나도 모르게 뇌관을 건드리고 말았다. 내 생각이 짧았다.

“핸드폰으로 게임하겠지요. 뭐.”

드디어 연심이 입에서 금기어가 튀어나왔다.

녀석은 말을 꺼낸 김에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아름이 엄마가 아름이한테 핸드폰 사줬데요. 365일 중에 43일밖에 못 노니깐. 그래서 불쌍한 아름이가 행복한 아름이가 됐어요. 엄마 감동이죠?”

커피포트가 김을 뿜으며 소리를 냈다.

물이 끓으면 자동으로 스위치가 꺼지는 방식이었다. 나는 컵을 손에 든 채로 녀석의 얼굴을 빤히 쳐다봐 주며 입을 벌렸다.

“헐.”

“나도 불쌍한 아이가 될 수 있어요. 엄마. 핸드폰만 가질 수 있다면 나는 42일 만 놀아도 될 것 같아요.”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딸아이의 입에서 자신이 감동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 핸드폰 액정이 34분을 가리켰다.

“늦었어. 지각이야. 나연심 얼른 일어나. 오빠 기다린다. 오늘 너 먼저 오면 피아노 갔다가 수학학원이랑 태권도는 오빠랑 같이 가고. 나무심! 얼른 나와!”

이럴 땐 딴청이 제일이었다.

연심이 끙끙거리며 겨우 의자에서 일어섰다. 녀석의 등을 떠밀어 현관까지 밀어 넣고 신발주머니를 손에 들려주었다. 무심이 어느새 현관문을 열었는지 찬바람 들어왔다. 입술이 제 코 보다 더 튀어나온 연심을 현관 밖으로 몰았다.

“나무심! 계단 조심해! 뛰지 마! 자자 늦겠다. 얼른 가 우리 딸.”

연심의 엉덩일 토닥여주자 마지못해 계단을 내려갔다.

어깨는 축 늘어뜨리고 운동화 뒤축은 접어 신은 채. 할 수 없다. 초 4에게 핸드폰이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초6도 이르다. 초6인 나무심이 핸드폰을 소지하게 된 건 순전히 남편이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나는 최대한 늦추고 싶었다. 늦출 수 있으면 있을 때까지. 아이들이 몇 살 때부터 핸드폰을 소유할 수 있는지 하고 묻는다면 내 대답이 그렇다는 것이다. 가이드라인? 그런 게 있으면 좋겠다. 선거 자격이 만 19세 이상인 것처럼 핸드폰 소지도 법률로 정하면 어떨까? 이런 소리를 입 밖에 낸 적은 없다. 일상의 세세한 부분까지 법이라는 강제성에 의존하려는 사람이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아들은 이미 멀찍이 멀어졌다. 제 오빠를 쫓을 마음이 없는지 연심의 걸음엔 속도가 붙지 않았다. 그 놈의 핸드폰. 한 반에 30명인 연심이네 반에서 핸드폰이 없는 아이는 저 혼자라고 했다. 그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꽤 많은 아이들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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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아침 기온이 꽤 쌀쌀했다. 현관문을 닫으려는데 마침 옥탑방 아가씨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출근 하는 복장은 아니었다. 그냥 모른 척 문을 닫으려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먼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녀도 나만큼 살짝 목례를 했다. 젊은 아가씨가 좀 쌀쌀맞기도 한 것 같고 뭣보다 표정이 없었다. 그녀가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때 까지 멍하니 서 있었다. 가끔 동네 여기저기서 애인인 듯 한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봤다. 그 때도 그녀는 저런 표정이었다. 애인이랑 있을 때는 좀 밝은 얼굴을 해도 좋을 텐데.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데 오늘은 저 아가씨라도 붙들고 물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몇 살 정도에 핸드폰을 사 주는 게 좋을까?

작년 12월이 무렵이었다. 남편은 무심이가 핸드폰을 사달라고 했을 때 두 말없이 오케이를 외쳤다. 나는 중학교 입학하기 전까진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남편은 무심이 핸드폰을 컨트롤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애매하고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연심이 까지 사 줄 까봐 내가 서둘러 타협을 했다. 이대로라면 연심이도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핸드폰을 사 줘야 할 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나는 왜 싫은 걸까? 그 이유를 나도 명확히 모르겠다. 그래서 이리저리 갈팡질팡 일관성이라고는 없이 흔들린다. 옥탑방 아가씨의 뒷모습이 어째 연심일 닮아보였다. 그녀도 뭔가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있는 걸까?

집안을 대충 치워놓고 출근 준비를 했다. 그 전에 핸드폰의 플래너앱을 켰다. 요즘은 그날그날 할 일을 메모하거나 확인해두지 않으면 한두 개는 빼먹는 게 태반이었다. 일단 남편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아침밥은 잘 챙겨 먹고 갔느냐,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라는 일상적 내용이었다. 하트모양의 이모티콘을 3개 붙였다가 1개를 더 넣었다. 이번 주 내내 남편이 출근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독일에 서버가 있다는 새로운 메신저를 사용했다. 남편과 무슨 극비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건 아니었지만 일종의 시위라고 생각했다.

그 사이에 스터디 모임의 단체 대화방에 새로운 메시지들이 속속 떴다. 흘끗 보니 어젯밤부터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93개나 밀려있었다. 단체 대화방에서 숫자가 세 자리를 넘기는 일은 예사였다. 연심이 초2때 같은 반 엄마들의 단체 대화방은 늘 세 자리를 넘겼다. 그게 성가셔 대화방을 몇 번이나 나왔지만 그 때마다 곧바로 초대하는 반장 엄마의 끈질김에 지금은 아예 포기했다. 가끔 학교 행사나 학년 별 준비물 같은 유용한 정보를 날릴 때도 있었다. 그래도 읽지 않은 메시지가 세 자리를 넘기면 신경에 거슬리기 마련이었다. 남편의 답장에 웃음 이모티콘을 날리고 이런저런 메시지를 처리하는 데 몇 분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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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시 학원에서 고등부 수업을 한 지 20년 가까이 되었다. 유능한 후배가 운영하는 학원에 숟가락 하나를 얻은 지 3년 째였다. 이력서 연령 난에 40이 붙는 순간 다니던 학원에서 나왔다. 마흔을 넘기고 학원 운영자가 아닌 직원으로 일하기는 쉽지 않았다. 때마침 후배가 학원을 열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할 작정이다. 보통 수업은 오후 6시를 넘겨야 시작된다. 게다가 요즘은 학기 초라 학교마다 야간 자율학습을 강제로 시행해서 평일 수업은 8시부터 할 수 있었다. 점심부터 출근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집에 있지 않았다. 일찍 학원에 나가 내 개인적인 일을 처리했다. 개인적인 일? 일종의 노후에 대한 대비책? 학원 강사를 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위한 투자? 각종 자격증 강의를 듣거나 문제 풀기였다. 자격증을 어디에 쓸 것인가?는 잘 모르겠다. 앞으로 20~30년 뒤에 7만개의 직업군이 소멸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따는 자격증이 모두 그 직업군에 포함된다고 해도 나는 지금은 그 자격증이 필요했다. 그래야 마음이 안정되었다. 내가 미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는 불안감이 사라졌다. 친구들은 불치병이라고 했다.


핸드폰(상): 너와 나의 연결고리 - 이기자 이야기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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