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하):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기자 이야기

by 이야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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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하):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기자 이야기


어제 퇴근 무렵이었다. 후배가 명함 크기의 수강료 5% 할인 쿠폰을 사탕과 함께 투명봉지에 넣고 있었다. 중학교 앞에서 학원 이름이 적힌 띠를 두르고 쿠폰을 돌릴 예정이라고 했다. 후배는 노란색 천에 학원 이름을 새긴 띠를 보여주었다. 나는 가급적 총선 기간은 피하라고 일러주었다. 총선기간에 맞춰 급조된 신생 정당이라고 착각하기 좋을 모습이었다. 유행가에 학원 이름을 넣어 개사한 노래라도 틀면 딱 이었다. 나는 후배와 함께 학교 앞에서 사탕 봉지를 돌려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후배도 딱히 내게 부탁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사탕 포장이라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지런한 성격상 어제 밤에 일을 모두 끝내놓았을지 모른다.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걸 알면서도 일단은 일찍 출근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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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창에 후배의 이름이 떴다. 노란 띠를 두르고 사탕봉지가 든 쇼핑백 앞에서 후배가 활짝 웃고 있었다.

‘벌써 다녀 온 거야? 사탕이라도 싸려고 했는데’

나는 부랴부랴 메시지를 보냈다.

‘그럼요. 이건 아침에 나가기 전에 찍은 거예요.’

금방 답이 왔다. 괜스레 미안했다. 사진과 메시지로 전해져서 다행이었다. 이럴 때 전화로 직접 목소리를 들으면 더 미안했을 것이다. 새삼 상대와 나 사이에 놓인 핸드폰이 고마웠다. 화가 나거나 언짢을 때도 그랬다. 일단 문자로 할 말을 찍으며 가장 거친 감정은 걸러져 나갔다.

일찍 출근할 일이 사라졌다. 점심은 집에서 먹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그제야 밥이 없다는 생각이 났다. 사다 둔 즉석 밥도 없었다. 연심이 방을 좀 정리하고 출근하면서 동원시장에 들러 잔치국수라도 사 먹어야겠다. 마음먹은 김에 딸 네미 방으로 들어갔다. 서랍장 위에 널린 옷들과 책상 위를 뒤덮고 있는 온갖 물체들을 보니 한숨이 났다. 책 상위를 정리하는 데 펼쳐진 종합장이 눈에 띠었다.

‘팬티 맨과 팬티 걸의 탄생’

연심인 만화를 주로 보고 만화를 주로 그렸다. 녀석이 새로 그린 만화 제목이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며칠 전부터 제가 새로 그리는 만화를 봐달라고 종합장을 들고 내 뒤를 졸졸 따라왔었다. 나는 대충 보는 시늉만 했었다. 무슨 ‘맨 과 걸’ 만 얼핏 본 기억이 났다.

만화는 평범한 초등학교 3학년 오빠와 1학년 여동생 앞에 팬티 모양의 우주선이 나타나면서 시작됐다. 우주인은 지구에서 유일하게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아이들이라며 오빠와 여동생에게 특별한 팬티를 선사한다. 그 팬티에는 하늘을 날고 레이져 빔을 날릴 수 있으며 각종 능력을 쓸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단 아이들은 그 팬티를 바지 위에 입어야 했다. 나는 키득거리며 다음 장을 술술 넘겼다.

‘왜 우리한테 이런 팬티를 주는 거죠?’

팬티 걸이 물었다.

‘우리는 많은 아이들에게 이 팬티를 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팬티를 제 마음대로 사용했지. 너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우주인이 말했다.

‘왜요?’

눈치 없어 보이는 팬티 맨 이었다.

‘너희들은 핸드폰이 없기 때문이다.’

“헐, 대박.”

내가 말했다.

이 무슨 기도 안차는 전개란 말인가? 기·승·전 핸드폰이었다. 나는 그대로 종합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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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책상은 치워도, 치워도 버릴 게 끊이지 않았다. 옷 정리를 대충 하고 방을 나오려는 데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조금 망설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보통 낯선 번호는 무시했다. 지금은 얼떨결이었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앳된 목소리가 쟁쟁거렸다.

“엄마! 오늘 4교시만 하는데 아름이네 서 40분만 놀다 피아노 학원가면 안돼요?”

휴대전화 안에서 울리는 딸의 목소리가 낯설었다.

“어? 아름이 폰이야?”

내 목소가 잘 안 들리는지 딸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야말로 애절했다. 나는 그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팬티 걸’에게 우주인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핸드폰이 없는 아이들에게 우주인은 무적의 팬티를 선사했다. 그렇다면 딸은 핸드폰이 없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 아닌가? 친구들은 다 가진 핸드폰이 없어서 영웅이 된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웅이었다. 그런데 다음 장면이 목에 걸렸다. 팬티 걸은 바지 위에 팬티를 입는 것을 창피해 했다. 젠장.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식탁 위에 둔 핸드폰을 제일 먼저 챙겼다. 언제가 부터 내가 움직일 때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핸드폰이었다. 나야말로 오늘은 기·승·전 핸드폰이 돼 버렸다.

수업시간, 아이들은 피곤해 보였다.

올 해 새로 고3이 된 아이들은 고3이라는 이름의 무게에 짓눌렸다.

“폰 바꿨네?”

앞에 앉은 녀석의 폰이 폴더 폰으로 바뀌어있었다. 고3이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아예 폰을 없애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니깐.”

혼잣말이었다.

그러니깐? 그 다음 말은 무엇일까? 내 입에서 나왔지만 다음 말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쉬는 시간 책상 위에 둔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했다. 딸은 제 시간에 피아노 학원에 갔다. 약속을 지킨 것이다. 아이가 학원에 도착하면 내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아이가 학원을 나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아이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다음 문자는 두 아이가 태권도에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핸드폰 화면에 뜬 문자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 때 남편에게서 문자가 들어왔다.

‘저녁은 해물짬뽕.’이라는 문자와 함께 세 식구가 입가에 뻘건 기름을 묻히고 앉아 웃고 있었다.

괜스레 마음이 약해졌다.

벌겋게 충혈된 눈에 다크서클을 훈장처럼 메단 남편이 나를 맞았다.

“아직 안 자요?”

나는 부츠의 지퍼를 열면서 시큰둥하게 물었다.

“응, 어서와.”

피곤해 죽겠다고 비명을 질러대는 얼굴로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던 남편이 대답했다.

나는 신발을 벗다말고 남편의 좀비같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참기 힘들었다.

“피곤한데 웬 게임? 당신은 핸드폰 게임을 왜 하는 거예요?”

내 목소리는 신경질과 짜증이 고루 베여있었다.

그제야 핸드폰 화면에서 얼굴을 뗀 남편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핏발 선 눈동자가 말갛게 보였다. 나도 그 눈동자를 피하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응시하던 차에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글쎄, 당신이 텔레비전 드라마 보는 것과 비슷한 이유 아닐까?”

남편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나는 입을 벌리고 남편의 미소를 감상했다. 할 말 없게 만드는 건 남편의 주특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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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오랜만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 올 때까지 출근을 미뤘다. 그리고 먼저 아들에게 물었다. 핸드폰은 꼭 필요한 거냐? 뭐 대충 이런 질문이었다.

“엄마! 저는 핸드폰이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도 필요하지만 내 자신과의 소통에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들 녀석은 내 질문에 정색을 하고 말을 이었다.

“핸드폰 게임을 하다보면 저도 모르는 저 자신을 발견해요. 그런 게 소통 아닐까요?”

제 할 말이 끝나자 쌩 하니 뒤도 안 돌아보고 현관문을 나섰다.

초6의 입에서 저런 말이 튀어나오는 건 다름 아닌 남편과 내 탓이었다. 나는 혀를 찼다.

제 오빠를 따라잡으려는 딸의 뒤통수에 대고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딸이 몸을 나를 돌아 보았다.

“엄마! 저스틴 비버라고 아세요? 어제 영어시간에 배웠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수가 됐데요. 오빠 핸드폰으로 뮤직비디오 봤거든요. 굉장하죠? 그리고 마술피리요. 밤의 여왕의 아리아도 배웠어요. 조수미인가? 어떤 아줌마가 부르는데 정말 잘해요. 학교 갔다 와서 복습했어요. 핸드폰으로.”

딸은 제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현관문 밖으로 사라졌다.

결국, 우리는 저마다 핸드폰과 살고 있었다. 남편과 핸드폰, 아들과 핸드폰, 딸과 핸드폰 그리고. 내 핸드폰이 울렸다. 친구의 메시지였다. 그리고 나와 친구 사이의 핸드폰.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어! 머지않아 스카이넷이 지배하는 세상에’

메시지를 확인하는 중에 다른 친구의 메시지가 떴다.

‘존 코너를 양육해야 해!’

갑자기 미래 사회가 떠올랐다. 기계의 시대, 지금도 사람과 사람 사이 핸드폰이라는 기계가 없으면 소통이 힘든 데. 그 때 핸드폰 위로 링크해 두었던 뉴스 사이트의 속보가 떴다.

‘000 2차 컷오프’

“이런 젠장! 000가 공천 탈락이라고 말도 안 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이건 사람이 한 짓이다. 핸드폰이든 알파고든 사람이 문제다. 아직은 그렇지 않을까? 딸이 내 나이가 될 때쯤이면 모르겠다. 어쨌든 연심이한테 핸드폰을 사 주는 문제는 미뤄볼 작정이다. 주말쯤 남편과 아이들과 더 이야길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핸드폰(하): 너와 나의 연결고리 / 이기자의 이야기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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