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올덴뉴 12화

[올덴뉴] 12편/원더보이

1987년 6.10 항쟁, 그해 여름과 열일곱 소년/김연수 장편소설

by 이야기술사

새책과 헌책을 골라 읽는 주말의 어린이, 청소년 도서 리뷰 No. 12

1987년 6월 항쟁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오늘, 제30주년 6.10 항쟁 기념식이 개최됐다.

올덴뉴 12편에서는 1987년 그해 여름, 열일곱 소년이었던 정훈의 이야기를 할까한다.

김연수의 장편소설 <원더보이>는 2008년 봄부터 2009년 여름까지 청소년문예지 「풋,」에 연재되다 중단되었던 소설이다. 작가는 연재 중단 3년 뒤 장편소설로 묶어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1984년, 아버지와 함께 집에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소년 정훈이다.

소설의 시작 시점인 1984년은 백남준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위성에 쏘아올리고, 이스라엘의 초능력자 유리 겔러가 한국을 방문해 숟가락을 구부리고 고장 난 시계를 고치는 쇼를 하고, 소비에트 연방의 우주비행사가 처음으로 우주 유영에 성공하고 과천에는 서울대공원이 개원했던 해였다.


1984년, 그 해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시작됐다.

백남준은 1월1일 뉴욕과 파리와 서울의 방송국을 위성으로 연결하는 쇼를 통해 지구가 콩알처럼

작아질 수도 있다는 걸 전 세계 2천 5백만 명의 시청자들에게 보여줬다.

가을에는 이스라엘의 초능력자 유리 겔러가 한국을 방문했다.

kbs는 많은 방청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숟가락을 구부리고 고장난 시계를 고치는 쇼를 방송했다.

전파와 염력으로 두 사람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놀라운 곳인지 보여줬다.

그다음은 내 차례였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간절하게 원한다면,

그 어떤 기적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 기사에 거짓된 부분은 한 군데도 없었다. 정말 각계각층 모든 국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내가 되살아나기만을 기원했다. 기사의 제목은 "원더보이, 희망의 눈을 뜨다"였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나를 원더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p.10)


모든 것이 새로웠고, 모든 것이 기적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1984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버지는 남파간첩의 차량을 향해 뛰어든 애국지사가 되고, 혼수 상태에서 깨어난 정훈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갖게 된다. 새로운 능력이 생긴 정훈에게 펼쳐진 세상은 지금까지 알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나를 원더보이로 만든 사람은 권대령이었다. 다들 보는 앞에서는 '대령님'이라고 했지만

돌아서면 '두더지'라는 별명으로 부르던, 보통의 군인과 달리 장발에 늘 사복 차림으로

밤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던 사십대 중반의 풍채 좋은 아저씨, 혹은 한국 사회를 이끄는

소수 엘리트들의 중의 한 사람으로 주름잡힌 두 개의 턱처럼 얼굴도 늘 두개를 준비하고 다니던 이중인격자.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본 얼굴이 그딴 식이었으니 내 새로운 삶이라는게 어떤 꼴로 전개될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권대령은 내 이마를 만지며 자상한 척 나를 했지만, 그 음성은 낮게 깔리며

내 가장 나약한 마음의 뿌리로 파고들었다.


"군(君)은 이제 국민 모두에게 희망의 마스코트가 됐다. (중략) 대통령 각하님께서는 유달리 군의 생사에 관심이 많으셨으니까. 매일 저녁 아홉시 뉴스에도 군과 관련된 소식이 제일 먼저 보도됐다. 각하님께서는 그 자리마저도 군에게 양보하신 것이다. 군이 다시 소생했다는 소식에 조국이 군을 크게 쓰려고 기적을 일으킨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p.10~12)


권대령은 정훈의 능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취조하려고 한다. '재능개발연구소'라 불리는 고문실에서 도망친 정훈은 화염병을 세상에서 제일 잘 던진다는 선재형, 군부에 의해 첫사랑을 잃고 남장을 하게 된 강토형(희선), 해직 기자 출신의 작은 출판사 사장 재진아저씨 등을 만난다. 정훈은 이들을 통해 타인의 상처와 아픔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렇게 소년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속에서 성장해간다. 강토형은 공감 능력을 지닌 정훈에게 작가가 될거라고 말한다.


"네게는 고통받는 이들의 삶과 완벽하게 공감하는 능력이 있으니 이미 절반은 작가나 마찬가지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독자들에게 자신이 보고 듣고 맛보고 경험한 것들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재능이야. 넌 그걸 가지고 있어."

(p.224)



1987년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빗자루로 천장에 벽지 바르는 법을 배웠다.

연탄 세장의 구멍을 맞추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1987년이 여름이 되자,

베드로와 요한 만큼 고독해 보이는 형들이 말했다.

우리가 살 세상은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누군가 예전으로 돌아가게 만든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절대로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우린 혼자가 아니라고.

(p.319~320)


2012년 2월 발행 당시 구입했던,

이 소설의 초판 320쪽의 마지막 문단에는

'1978년 여름'으로 적혀있지만

앞뒤 문맥과 전체 내용을 고려했을 때

1978년은 명백한 오자라고 생각되어

1987년으로 바꿔 적었다.

(초판 아닌 책에는 어떻게 적혀 있는지 모르겠다)


이 소설을 <굳빠이 이상>이나 <밤은 노래한다>처럼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김연수의 다른 소설과

비교한다면, 성장소설의 문법을 차용해서 그런지 다소 밋밋한 느낌을 준다.

시대적 배경에 비해 소설속 갈등과 대립은 극화되지 않으며

결말도 희선과 재진이 결혼한 후 정훈과 함께 서울대공원의 돌고래쇼를 보는

훈훈한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늘 엄마의 존재를 찾고자 했던 정훈이

국제조류학회에 편지를 보내

엄마의 흔적을 찾을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되는 장면과 돌고래쇼 보는 장면을

다시 읽고

나는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기적'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 일기를 통해 나는 나의 엄마가 당신들의 '여러 나라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삶'에 가락지를 등록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번호는 HONGKONG C7655입니다. 가능한 한 빨리 이 번호를 등록한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p. 254)


그럼에도 나는 기뻤다. 어쨌든 엄마, 아빠와 함께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 쇼를 본다는 소원은 이뤄졌으니까. (p.320)


기적, 그것은 꿈꾸던 일을 하나, 둘 이뤄가는 일.

그렇게 꿈꾸던 일을 하나, 둘 이루면서 어른이 되는 것.

예전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1987년의 광장을 빛냈던 일.

혼자가 아닌 우리가 모여

꿈꾸던 세상을 하나, 둘 이뤄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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