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봄, 5.18 민주화 운동, 한강 장편 소설/창비/2014
새책과 헌책을 맘대로 골라 읽는 주말의 어린이, 청소년 도서 리뷰 No.11
문재인 대통령이 곧 다가오는 37주년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2008년 이후 9년 만이라고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97년부터 2007년까지 5·18 기념식에서 제창됐으나
이명박 정부에서는 제창이 아닌 합창 방식으로 바뀌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소설가 황석영씨와
당시 전남대생인 김종률씨가 작곡한
민중가요이다.
5·18이 정부 기념일로 제정된 1997년부터
해마다 5·18 기념식에선 참석자 전원이 기념곡처럼 제창하였으나
일각의 문제 제기로 이명박 정부에서는 '제창'이 아닌 공연단의 '합창'으로 대체됐다.
기념식의 주무부처인 국가보훈처는 '님을 위한 행진곡' 가사에
논란이 있다는 이유로 '제창'을 반대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기념식에서 다시 제창된다는 보도에 대해
518 기념단체는 "그동안 먼길을 돌아왔다"며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접하고, 머릿속에 책 한권이 떠올랐다.
맨부커 수상 작가인 한강의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작품으로 열다섯 소년 동호가 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518 민주화 운동을 겪은 주인공들이 등장해
5월 18일부터 열흘 간의 상황,
그리고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소년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청소년 도서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지만
518 민주화 운동을 기리고자 이번주 올덴뉴에서는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화자가 다르다.
소년 동호가 등장하는 1장 <어린새>에서는 2인칭 화자 시점을 취한다.
동호는 '너'로 불린다.
이러한 구성은 독자인 우리가, 그해 봄을 겪고 살아 있는 사람들이
동호를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순식간에 주검이 된 주름진 얼굴을 보며, 그 어린 새 같은 것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몰라 너는 멍하게 서 있었다.
지금 상무관에 있는 사람들의 혼도 갑자기 새처럼 몸을 빠져나갔을까. 놀란 그 새들은 어디 있을까.
p. 22-23
1980년 5.18 당시 중학교 3학년인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전남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는다. 매일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을 수습하며 소년은 '어린 새' 한 마리가 빠져나간 것 같은 주검들의 혼을 위로한다.
한편으로는 동호는 시위대의 행진 도중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진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공장에 들어와 동생을 뒷바라지하던 정대의 누나 정미 역시 그해 봄 행방불명된다.
동호는 돌아오라는 엄마와 돌아가라는 형, 누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도청에 남는다.
시취가 가득한 도청에서, 오열하는 유족들을 보며 동호는 다짐한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p.45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p. 57-58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p.117
소설은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하던 형과 누나들이 겪은 5.18 전후 모습을 보여준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해 봄을 겪었던 이들에게 518을 현재진행형이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p.206-207
당시 수피아여고 3학년 시절이던 여고생 김은숙은 대학 생활을 포기하고 한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다 원고의 검열 문제로 서대문 경찰서에 끌려간다. 다음은 은숙이 편집한 원고 중 검열에 걸린 문장 중 일부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p.95
봉제공장에서 노조 운동을 하다 쫓겨난 임선주는 이후 양장점에서 일을 하다가 상무관에 합류하고,
경찰에 연행된 후 하혈이 멈추지 않는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상무관에서 연행된 대학생 김진수 역시 모나미 볼펜 고문, 성기 고문 등 끔찍한 고문을 받으며
수감 생활을 한다. 김진수는 출소 뒤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한강 작가는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자료를 취재했다고 한다.
작가는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풀빛 1990)과
<광주, 여성>(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후마니타스 2012), <우리들은 정의파다>(감독 이혜란),
<오월애>(감독 김태일), <5·18 자살자·심리부검 보고서>(연출 안주식) 등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국가의 공권력이 휘두른 폭력 앞에 셀 수 없이 많은 시민들이 한 순간에 주검으로 변해버렸지만
지난 정부에서는 그해 봄의 숭고한 아픔을 그저 한낱 '이념 논쟁'으로 치부해버렸다.
<소년이 온다>는 11만부 이상 판매되었지만
박근혜 정부가 주관하는 우수 도서 지원 사업 심사에서 탈락했다.
5.18을 전면으로 다룬 책이기 때문에
문체부의 이른바 '블랙리스트' 대상에 한강 작가가 오른게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문체부는 2015년 1월 세종도서 선정 기준에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순수 문학작품’ 등을 포함시켜 논란을 빚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인간이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것은 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 5.18 을 겪은 인물들의 삶을 조명하고,
그 시대를 증언한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