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백운대 코스
"오늘" 생각난 장소에 대한 비정기적 매거진 No.38
난 원래 등산을 싫어한다. 더구나 지난 여름에 열두시간에 걸쳐
한라산 등반을 한 이후로, 절대로! 여름엔
산에 안 가기로 다짐했다.
(몇년전 여름, 북한산 입구의 어느 주점에서 막걸리를 마신 적이 있으나
굳이 막걸리 마시자고 북한산까지
가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평양냉면을 먹고 싶었다.
여름엔 냉면이니까!
기왕이면 한번도 안 먹어본 냉면을 먹어보자!
그런데,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집들이 주로 북한산 자락에 있다고 한다.
나 혼자 간다면, 그냥 평양 냉면 집으로 가겠지만 등산을 좋아하는 일행과 같이 간다면,
절대로 산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대신 딜을 했다. 백운대 정상까진 절대로, 절대로
안 간다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한라산 꼭대기에 간 이후로 내 인생에 목표란 건 없다고 말했다.
원래 인생이란 게 그렇다.
목표가 생기면 피곤해진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니까.
중도포기하면 패배감에 휩싸이니까.
그래 삶에 굳이 목표가 필요하다면,
오늘은 평양냉면을 한번 먹어보자!
이 정도면 충분하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슬슬 지치기 시작한다.
빨리 내려가고 싶다.
잠시 쉼터에서 쉬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백운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사진 찍는데만 30분이 걸린다고 했다.
백운대 사진, 굳이 안 찍어도 된다.
그래도 북한산에 왔으면 백운대 정상엔 한번 가봐야하지 않겠냐는 어떤 등산객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인생에 목표를 설정하면 삶이 피곤해지거든요.
북한산이라면 비봉에 오른 걸로 충분해요. ^^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백운대 정상에는 가보면 좋지 않을까?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일행에게
나는 이번 생엔 글렀어~ 라고 대꾸하고
빠르게 산을 내려갔는데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가
다음 생을 논하기엔 아직 이른 나이 아니냐고 했다고 한다.
백운대 등반을 빠르게 포기한 덕에
계획에 없던 도선사에도 잠시 들렀다가
네비게이션으로 평양냉면 맛집들을 검색했다.
요즘 핫하다는 만포면옥을 갈까 했으나,
길을 돌아가는데다, 핫플이라 대기인원이 많을 수 있다는 의견에 따라 빠른 포기.
꼭 그집을 가야만한다는 마인드란 내게 없다.
대신 의정부의 평양면옥으로 가기로 결정.
이곳도 수요미식회에 나온 유명한 집이라고 한다.
수요미식회 100회 특집(섭외 못했던 식당편?)에 나왔다고.
입구에 들어서니 이제 포장은 안된다는
안내문이 있다. 다행히 만석은 아니고, 좌석에는 여유가 좀 있었으나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그런데 메뉴판에 메밀 물냉면/메밀 비빔냉면만 있다.
주문할 때 평양냉면은 뭐예요? 라고 물으니
메밀 물/비빔냉면이 바로 평양냉면이라고 한다.
일행들의 어이없는 시선을 외면한 채 골고루 섞어서 주문했다. 처음 먹어보는 평양냉면. 개인적으로 나는 맛있었다.
먼저 평양냉면을 맛본 사람들이,
맛이 심심하다고 했고,
일행들도 우리 입맛엔 맞지 않는다고,
이미 아는 냉면 맛을 먹고 싶다고 했지만
내가 초딩입맛임에도 불구하게 꽤 맛있게 먹었다.
가격은 물/비빔 냉면 동일하고, 개당 11,000원이다.
북한산 등반도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다.
엄청 더울줄 알았는데 바람이 꽤 불었고
오늘 안에 완주해야 한다는 목표가
없으니 마음이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