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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Dec 04. 2019

[달쓰반]100편-완결/일상과 예술,불안의 서와 패터슨

페르난두 페소아/배수아 옮김/봄날의 책/2014,  영화 패터슨/2016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문화 리뷰 No. 100 (완결편)

※ 주의  : 이 리뷰는 영화 <패터슨>의 주요 내용 및 결말을 언급합니다.



동명이인.

이런 말은 많이 들어봤어도

동인이명(同人異名)


이런 말은 생소하다.

<불안의 서>의  역자인 배수아는

 페르난두 페소아를 헤테로님(이명)의 작가로 명명한다.

작가들이 본명과 다른 필명을 쓰는 경우도

많은데 왜 페소아에게는 유독 동인이명의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었을까?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그의 헤테로님들은  

다양한 면모를(소설가,시인,점성술사,자살한 귀족, 불구인 여성)을

지니고 있으며

서로 다른 관점과 세계관을 갖고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생전에는 무명의 작가였던 페소아가

끝내 완성하지 못한 원고

저자가 기이하게 여러번 바뀐 원고

그의 사후 친구들이 커다란 궤짝에서 발견한 원고

시,산문,희곡,철학,평론,언어학,정치론,점성술 등

광범위한 분야의 텍스트와 단상이

공책,편지지, 광고지나 전단지의 뒷면 등에

적힌 원고...

이런  원고 등을 모아 발간한 책이

바로 저자 아닌 저자의 작품이자

책 아닌 책인

<불안의 서>이다.


역자인 배수아의 설명에 의하면

이 책은

페소아의 준헤테로님인

보조회계원 베르나두 소아레스가

쓴 것이긴 하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페소아는 처음에는 저자인 산문시의 형태로

인물의 심리에 맞춰 원고를 다시 쓰려 했으나

결국 실현하지 못했다고 한다.


85 (p.167)

풍요로운 문학적 성과를 이룬 사람들

아니면 내차 최소한 알고 있거나 혹은 이름을 아는 이들이

발표한 글이나

완성된 저작물을 보고 있으면

정체 모를 질투심이 내 안에 솟아나는 걸 느낀다.

(중략)

오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구절과 요약문을

파편의 형태로 쓸 수 있을 뿐이므로,

나 자신 또한 불충분하다.

설사 형편없는 것이라 해도

어쨌든 온전한 하나의 작품일 테니까

완성된 형태를 갖춘 작품이 더 나은가,

아니면 차라리 무능력을 고백하는 말의 침묵이,

영혼의 완전한 숨죽임이 더 나을 것인가.



169 (P. 303)

천천히 그리고 맑은 정신으로,

나는 내가 쓴 모든 글을 한 편 한 편 다시 읽어본다.

전부 하찮게만 보인다.

차라리 쓰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글이다.

그것이 제국이든 문장이든 간에,

단지 현실에서 탄생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최악의 현실성이 달라붙게 된다.

하지만 지금 내 글을 다시 읽고 있는

이 느림의 순간,

나는 그 사실이 가슴 아프지 않다.

나를 아프게  하는 사실은 이 글을 쓰느라

수고할 가치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글을 쓰면서 흘려보낸 시간 동안

내가 가졌던 환상,

이 글이 가치로울 것이라는 환상이

글을 쓰면서 도리어 파괴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231 (p.403)

그런데도 왜 나는 글을 쓰는가?  

체념의 예언자인 나는 아직도 완벽한 체념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나는 써야만 한다.

나에게 내려진 최대의 벌은,

내가 무엇을 쓰든지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며,

실패작일 수밖에 없고,

정체가 불분명할 것임을

미리 안다는 점이다.


<불안의 서>는 베르나르두 소아레스에 의해

‘포르투갈에서 가장 슬픈 책’으로 명명된다.

그는 리스본의 장소와 풍경들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말들을 고백한다.


<불안의 서> 저자인

베르나르두 소아레스는 페소아와 동일인물은 아니지만

페소아의 개성과

정체성을 상당 부분 반영하는 존재이라고

배수아는 설명한다.


페소아와 마찬가지로

소아레스도

무역회사의 직원이었으며

여가 시간은 거의 글 쓰는 일로 보냈기 때문이다.


479 (p.785)

 저 아래, 내가 서 있는 언덕에서 한참 가파르게

경사져 내려간 비탈에, 차가운 달빛 속에

도시가 잠들어 있다.

 나 자신을 절망한다. 내 속에 영원히 갇히고

말리라는 깊은 불안이 나를 엄습하여, 내 안에

단단히 자리 잡는다. 나는 오직 연민이고,

공포이고, 슬픔일 뿐이다.

이해할 수 없이 과도하게 밀려오는 부조리한 고뇌,

사그라들지 않는 고통, 오직 홀로 외로이,

형이상학적인 나의(...)


책을 다 읽고 나니,

페소아는

자신의 불안을 해소한 방법으로

끊임 없이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여기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꾸준히 시를 쓰는 또 한 명의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패터슨.

그는 미국 뉴저지의 소도시의 '패터슨'에

살고 있는 버스 운전사이다.

그의 일상은 사실, 특별할 게 없다.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23번 버스를 운전하면서 승객들의 대화를 들으며 시상을 떠올리고,

가끔 틈틈이 시를 쓴다. 퇴근 후엔 자신의 시를 인정해주는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애완견 마빈을 데리러 산책하러 나가고,

동네 바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한다.


늘 똑같아 보이는 일상이지만,

조금씩 "예외"인 일도 일어난다.

23번 버스가 고장나기도 하고,

총으로 난동을 부리는 단골 바의 손님을

제압하기도 하며,

(알고보니 총알은 스티로폼 총알이었지만)

애완견 마빈이 시를 기록한 노트를 갈갈이 찢어버리는 일도

생긴다.

(이때 패터슨의 대사처럼, 마빈이 정말 미웠다!

패터슨은 아내 로라와는 달리 휴대폰이나, 노트북, 아이패드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로라는 패터슨에게 그의 시를 복사해두라고, 말하기도 했다.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패터슨>은

단조롭고 규칙적인 일상,

하지만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일상과

패터슨이 시를 틈틈이 고치며,

꾸준히 써나가는 모습을 교차 편집하며

반복되는 일상이 곧 예술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꾸준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 이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은

  말머리를 단 글을

매주 한 편 이상의 글을 올리자, 였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최소한 포스팅을 100편 이상은 자는 것이었다.

어느덧 이 말머리를 달고 글을 쓴지도,

3년이 넘었, 글은 100번째로 

리는 <달.쓰.반>의 마지막  포스팅이. 


그동 

리뷰라고 이름붙여  쓰긴 했지만,

허접한 후기나 다름없는 글을 쓰는 과정을,

예술의 일부였다,고 우기고 싶지도 않다.


다만,  페소아의 고백처럼


내가 무엇을 쓰든지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며

실패작일 수밖에 없고

정체가 불분명할 것임을 미리 안다 할지라도,


순진무구한 얼굴을 한 애완견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소중하게 써내려간 기록을

갈기 갈기 찢어놓는 것처럼


구입한지 오래된 컴퓨터나 휴대폰이

불시에 다운 되는 순간,

자동저장 기능을 제대로 작동시키지 않아

장시간에 쓴 글들을 한순간에 날려버린다고 할지라도,


내가 장담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어떤 형태로든...

언제 어디서든

무엇인가를 계속 쓰고 있을 거라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을 파고들며

때때로 나를 괴롭히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불안의 서>를 읽으며,

페소아가 토로하는 불안의 감정들에 동조했다가

영화 <패터슨>을 보면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걸 느꼈다.


아담 드라이버.

패터슨 역할을 맡은 그를 처음 본 것은

 HBO의 드라마 <걸스>였다.

드라마를 본 지가 오래되어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드라마 초기에 나왔던 아담 드라이버의 모습은

패터슨의 차분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괴짜였던 것 같다.

그 이후 <스타워즈> 시리즈의 카일로 렌으로 그를  다시 접했지만,

솔직히 나에겐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패터슨>에서의 차분하고 관조적인 모습은

매우 좋았다.


영화 속에서 패터슨이 좋아하는 시인으로 나오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패터슨이라는 시를 발표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영화는 그 시를 영화로 옮긴 셈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흔적을 찾아 미국의 소도시 패터슨으로 오게 된

남자(아마도 시인이겠지)와 주인공 패터슨이

폭포 앞에서 시인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그 후 남자는  패터슨에게 노트를 선물하며

"때로는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난다.


그래, 시에 너무 많은 말들이 필요가 있나.

시인이세요? 라는 물음에..

아.. 라고 뜸들였던 패터슨의 모습을

겹쳐보며

그가 영화 속에서 쓴 시를 생각해본다.


 Poem


I'm in the house

It's nice out warm

sun on cold snow.

First day of spring

or last of winter.

My legs run up

the stairs and out

the door, my top half here writing


난 집 안에 있다.

바깥 날씨가 좋다

포근하니,

차가운 눈 위의 햇살

봄의 첫날

혹은 겨울의 마지막

내 다리는 계단을 뛰어올라

문 밖으로 달리고

나의 상반신은 여기서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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