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불문, 반전있는 금요일의 리뷰 NO.16
※ 주의 : 이 리뷰는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아가씨>를 흥미롭게 보았다.
특히 영화의 도입부부터 인상적이었었다.
숙희가 하녀로 들어가는 곳은
넓은 정원을 갖춘 대저택이다.
이곳에 입성하는 숙희에게 사사키 부인은
본채는 조선 어디서 볼 수 없는 양식이라고 설명한다.
대저택의 본채는 서양식 건물인 양관과
일본식 목조건물이 나란히 붙어있다.
일본적 요소와 서양적 요소가 섞여있는
이종(異種)의 공간이 바로 이 코우즈키 저택인 것이다.
그리고 숙희가 머물고 있는 초라한 한옥은 하녀들의 공간이다.
최근 근대건축물에 관한 책과 자료를 살펴보면서
일본식가옥을 ‘적산가옥’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적산가옥은 적이 남겨놓은 재산을 일컫는 말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본식건물을 주로 가리키는 말이다.
만약 <아가씨>의 속편이 제작되고,
그 배경이 1945년 이후의 한국이 된다면
<아가씨>의 대저택은 적산가옥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일제의 잔재인 적산가옥을 부술 것인가,
뼈아픈 역사도 역사이므로
보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지금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보호하려는 것으로
입장이 정리되었다.
군산의 히로쓰가옥이나 부산의 정란각은
대표적인 적산가옥이면서 문화재로 지정된 근대건축물이다.
그런데 영화 <아가씨>는 민족주의적 시선에서 제작된 영화는 아니다.
코우즈키는 뼛속까지 일본인이고 싶어 했던 조선출신의 일본 귀족이지만
코우즈키가 조선인을 수탈하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다.
다만, 책을 읽는 코우즈키를 조선인 하인이 등에 업고
힘겹게 지고 가는 장면이 한 컷 정도 있을 뿐이다.
영화는 주로 코우즈키의 변태적 욕망과
그의 지배 아래서 보호를 받는 히데코의 탈주 욕망에 초점을
맞추는데, 나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던 것은 바로
‘근대’라는 단어였다.
왜 이 영화는 근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택했으며,
이시기에 지어진 서양식건물과 일본식건물을 주요 장소로 사용했을까?
일본의 지배로 우리나라가 근대화 되었다는 식민사관을
가장 결정적으로 드러내주는 인물이 바로 코우즈키다.
그는 조선은 추하고, 일본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는 연미복을 차려입은 신사들을 초대해 낭독회를 여는데,
여기서 이중, 삼중의 분열된 욕망이 드러난다.
코우즈키는 조선인으로 태어나서 일본인을 동경해 귀화까지 했지만
일본인들의 욕망이 향해있는 것은 서양이다.
백작이니 하는 작위도, 사실 일본의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
서양식 신분제도를 따온 것이다.
아가씨는 기모노와 서양식 드레스를 번갈아 입으며
낭독회에서는 일본서적과 서양서적(음란소설)을 번갈아 낭독한다.
애초에 본질적인 것은 하나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외관만 흉내내던 코우즈키의 욕망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기괴한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코우즈키는 서재를 화려하게 꾸미는 것으로
자신을 한껏 드러내려고 하지만
기실 그에게 딱 어울리는 공간은
지하실처럼 어둡고 음습한 공간이다.
또한 일견 정갈해 보였던 일본식 다다미방은
사실상 겹겹이 제 속내를 감추고 있는 공간이었다.
히데코와 숙희가 각성한 이후
그녀들은 겹겹의 억압을
열어 제치고 바깥의 공간으로 나아가게 된다.
사실 왜 하필, 그 시기의 일본인 귀족이 주인공이어야만 했느냐는 점에서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영화 속에서 딱히 계급의 충돌이 두드러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남성과 여성, 젠더의 충돌이 두드러졌던 영화였다.
(하정우와 보냈던 초야도 그런 부분을 보여주는 장면)
각성하게 된 히데코는 남성이 여자에게 쾌락을 준다는 주입식 성교를 거부하고
(하정우가 여자들은 억지로 하는 관계에서 흥미를 느낍니다, 했다가
나중에 히데코에게 편지로 면박당하기도 한다)
홀로 또는 숙희와의 관계에서 환희를 느낀다.
ps. 우리나라 근대시기의 서양식 건축물(ex. 부산의 백제병원, 일신여학교)은
붉은 벽돌을 외장재로 사용한 것이 많은데 아가씨의 서양식 건물도 붉은 색 벽돌을 외장재로 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