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나와는 달리, 손재주가 좋다. 엄마는 나를 키울 때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해서인지 딸이 뚝딱뚝딱 뭐든지 만들면 신기해한다. 한 손이 불편한 나는 항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온아, 할머니가 엄마는 그러지 못해 네가 신기한가 봐."
어린이집에서 가져온 교구를 들고 자기가 만들고 싶은 모양을 그렇게 잘 만든다.
우리 엄마는
"그래, 그렇게 만드는 걸 힘들어했어. 미술 준비물을 가져갈 때 미리 하고 가져갔어."
어림풋이 고무판화를 팠던 기억이 난다.
"3, 4학년 때쯤 한 친구가 도와준다고 하더라고. 그러고는 5, 6학년때는 괜찮아지더라. 2, 3학년때는 엄청 힘들어했어."
"아, 남자아이지? 박한규야. 누나가 5, 6명이었거든. 이름 아직도 기억이 나."
"진짜?"
"응"
유일하게 내가 먼저 장난을 칠 수 있었던 아이로 기억한다.
한 장면이 스치며 생각난다. 그 친구 집이 학교 바로 옆이었다. 학교 교실 복도 창문에서 보면 보였다. 하루는 창문 밖으로
"메롱메롱"
그랬다.
"기다려. 학교 가서 잡히면 죽는다."
진짜 집 대문 밖으로 나오려고 하여 화장실에 숨었다.
잠시 후에,
"한세영 너 나와."
하며 화장실 입구에서 소리를 쳐 몸을 움츠린 채 쭈뼛쭈뼛 나갔었다.
"너.....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그러면서 환하게 웃어 주었다.
계속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졸업할 때까지 어쩌다 한 두 번 복도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서로 반가워했었다.
25살 때쯤에도 시내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낯익은 얼굴이라 쳐다보니 그 친구였다.
나는 당황하여
"어....?"
반면 그 친구는 변함없이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세영아, 안녕."
하고 지나갔다.
내 미술을 도와주었듯이, 그때도 미술도구를 넣는 통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아직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게 놀랍기도 했다.
그 후로도 싸이월드에서 파도타기로 그 친구의 이름이 보여 혹시나 하여 인사를 남겼던 기억이 난다.
답장으로
"어, 세영아."
하고 왔다. 더 많은 대화를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면 보통 인연은 아니다. 졸업하면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렇게라도 보고 연락이 되었으니 말이다. 축구선수로도 활동했었던 멋진 친구였다. 지금은 아마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되어 있을 모습에 문득 웃음이 난다. 그때는 어려서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아마 좋아했던 마음도 조금은 있었던 거 같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 친구를 추억하니 괜스레 설렌다. 세월이 흘려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추억할 수 있다는 건 너무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