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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재미양 Oct 24. 2021

복장에 대하여

옷 고르기는 쉽지 않다. 모래가 가득한 나라에서 살던 나로선 더 그렇다. 그곳은 12월이 가장 시원하고 기분좋아 가벼운 겉옷과 반팔만 있어도 일년내내 문제 없다. 한국의 사계절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사시사철 변하는 날씨는 혼란스럽다. 게다가 앞에 초자를 붙여, 초여름, 초가을, 초겨울 같은 틈새 계절에 입어야 하는 간절기 복장, 거기에 맞는 목도리며 장화며 액세서리들이 구비구비 줄지어 서서 결정을 재촉한다. 철이 오기 전에 미리 옷을 사두어야 한다는 건 몇 번의 쇼핑에 웃돈을 들여 산 후로 알게 된 뼈아픈 가르침이다. 내 한 몸도 어려운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다 같이 상상해보자.


아이들의 몸 구조는 참 작다. 양말 한 켤레를 신겨도 두 손으로 능숙하게 그 작고 조악한 구멍을 벌릴 줄 알아야 하며 통통한 발을 아프지 않게 하는 동시에 스치듯 지나가야 한다. 물론 아이의 참을성이 바닥나기 전에 착용에 성공해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양말뿐이랴. 아이가 스스로 입고 벗고 할 때까진 계속인 것이다. 인형 옷을 입혀본 사람이라면 그 구조적 어려움에 대해 알 것이다. 근데 마침 그 인형이 마구 움직이고 칭얼거린다?! 참으로 난감하다. 그런 일과를 매일매일, 두 아이와 하던 나는 이제 베테랑이 되었다.


일단 두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협박해 현관까지 데리고 와 키즈 영양제를 제공한다. 총 세 가지. 영양제 하나에 셔츠를 입고, 두 번째에 바지와 양말을 신고, 세 번째엔 신발을 신는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스스로 하게 두고 나머지는 보조한다. 초가을인데도 내 몸은 이미 땀범벅이다. 이제 내 차례다.


부끄럽지만 세수와 양치는 생략하는 날이 많다. 머리는 전날 그대로다. 그래도 거울은 본다. 뒷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려 정리도 한다. 컨디셔너 사는 걸 계속 깜빡하는 바람에 어릴 적 마당에서 키우던 강아지 털처럼 끈적거리고 뻣뻣하다. 복장도 전날 입던 그대로다. 냄새만 나지 않는다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하며 애써 거울을 응시한다. 셔츠는 어제 걸어둔 그것. 주로 어두운 색. 활동에 좋은 바지. 체력이 좋다면 치마를 입는다. 간절기에는 겉옷을 걸치는데 이것만 여러벌로 준비해도 질리지 않고 돌려 입을 수 있다. 어제와의 복사/붙이기가 끝나면 대충 나의 몸뚱이도 나갈 준비를 마친 것이다.


연예인들의 공항룩처럼, 양육자들에게도 등원룩, 하원룩이 있다. 집안에서 주로 살림과 육아를 병행하는 람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때 취하게 되는 복장을 일컫는다. 지역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실용적이고 편안한 복장으로 알려진 브랜드나 스타일이 퍼져 간혹 중복된 차림세를 입은 사람들이 아이들과 함께 오가는    있다. 어떤 이들은 그런 복장을 질타하거나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개그로 소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육아와 살림 이라는 촉박한 시간 싸움 사이에  몸뚱이를 건사한다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를 케어하기 위해서 나를 위한 고민은 언제나 최소여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차려입은 육아러들을   있다. 그것은 그들의 부지런함이 빛나는 것이다. 여유가 아니다.


그러니 길 가다 하나같이 비슷한 원피스나 셔츠에 낮은 슬리퍼를 신거나 모자를 눌러쓴 여인들을 보거든 비웃지 말라.  우리는 일하는 중이다. 스티브 잡스의 그것처럼 위대한 유니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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