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재미양 Oct 24. 2021

마흔의 소원

'오늘 밤 꼭 소원을 빌고 자요.' 친구가 말한다. 언제나 수수께끼 같은 주문을 하지만 빈말은 안 한다. 이유가 있을 텐데, 자초지종을 묻기엔 시간이 없어 그러마 하고 대답 하곤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날, 하루 종일 소원이라는 말이 맴돌았다. 첫째가 추석맞이 숙제로 달 관찰일지를 가져온 적이 있다. 추석을 전후로 달이 어떻게 차오르는지, 정월 대보름이 얼마큼 지나야 오는지, 달을 관찰한 상황이나 기분, 그리고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적으라는 내용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달과 소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아이와는 달을 자주 바라본다. 나를 닮은 아이라서 그런가, 감성 깊고 상상도 많이 한다. 언제나 하늘의 달을 발견하면 모두에게 알리고 자신도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런 아이와 밤길을 걷다 달 사진을 찍었다. 분명 하늘에 떠 있는 달자국은 반듯한데 찍힌 사진 속 달은 흐리멍덩하다. 역시나 밤 촬영은 어렵다. 사진 앨범에 온전한 달이 남아있는 적은 없다. 그래서인가. 한번 달을 보게 되면 세세하게 뜯어본다. 사진에 모두 담기지 않은 그 영험함. 절로 소원을 빌고 싶어지게 하는 뭔가가 있다. 이러니 옛날부터 달을 바라보며 빌면 이루어지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일까. 사진을 찍고 나서 아이가 말한다. "엄마, 달 속에는 토끼 두 마리가 산데. 그리고 그 토끼가 우리한테 와서 소원을 들어준데."


어릴수록 소원이란 단어는 각별한가 보다. 소원이라니. 까마득하게 먼 곳에 두고 온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마흔을 바라보는 내게도 소원이 있을까? 너무 많은 것이 떠올라 괴로울 지경이다. 코로나 종식되게 해 주세요,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 건강하게 해 주세요, 저작권으로 먹고살게 해 주세요, 전쟁 안 나게 해 주세요 등등. 아무리 머릿속으로 떠올려봐도 전부 만족스럽지 못하다. 왠지 딱 한개만 빌어야 할 것 같은데 이 소원을 빌면 저 소원이 아쉽고, 저 소원을 빌자니, 이 소원이 급한, 우화 속 욕심꾸러기처럼 이리저리 마음을 저울질했다. 보통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 욕심꾸러기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지.


하루를 마무리할 무렵 친구의 말이 떠올라, 가족들에게 알렸다. 각자 빌고 싶은 소원 하나쯤은 있겠지 싶었다. 일곱 살 아이에게도 알려줬더니 잠시 침대에서 말이 없다가 소원 다 빌었다고 외쳤다. 생일에는 촛불을 불며,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산타에게 편지를 쓰며, 언제나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빌던 아이였다. 단시간에 소원을 생각해내다니. 그리고 그걸 냉큼 빌다니. 감탄스러웠다. 어쩌면 저렇게 진심일 수 있지. 소원을 빈다고 진짜 이뤄지는 건 아니야라던가, 산타는 없단다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그 순수함이 부러워진다.


내가 진짜 바라는 게 있었던 걸까 의심해본다. 일곱 살 아이에게도 당연하던 어떤 바람은 어른이 된 내게 너무 당연하거나 혹은 이상적이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아이를 키우며 작업을 한다는 건 저 멀리 달에게 소원을 빌 정도로 낭만적이지도 않았고 언제나 현실은 코 앞에 있었다. 당장 아이를 등원시켜야 한다던가 감기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했다. 그런 나날이 이어지면서 어느샌가 가슴속에 품고 있는 소원 하나 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건 아니었을까. 자정을 넘기며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소원은 결국 빌지 못했다. 대신 새로운 소원들을 품어보기로 한다.


의심을 누르고 속는 셈 치고 한번 마음 속 소원이란 걸 헤아려보기로 한다. 일곱 살 아이를 키우며 품어온 이 글들처럼 틈틈이 생각하다 보면 쌓이게되고 내 소원들도 진심 어리게 다가오지 않을까.


누군가가 들어주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복장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