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에는 수박도 맛이 없고 참외도 싱거웠다.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일 때도 장마철에는 물을
머금은 꽃에서 흐릿한 색이 나올까 봐 장마가 끝나고
해가 쨍쨍한 날을 며칠 보내고야 꽃잎과 잎을 따서 백반을
넣고 빻았다. 다음 공정은 엄마가 해준다. 자기 전에 손톱에
올리고 비닐로 감싸 두꺼운 이불 실로 칭칭 묶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답답했던 비닐을 쑥쑥 뽑아내면
손가락 끝이 쪼글쪼글하다. 한 번에 색이 진하게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어서 괜히 지난 장마 탓을 한다.
아파트 화단에 봉숭아 꽃들이 한창인데 보고 있으면
괜히 손끝이 간질간질 한 것 같다. 장마가 지나면
오랜만에 봉숭아 물을 들여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