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버닝햄 할아버지, 그곳에서도 행복하세요!
그림책 작가 존 버닝햄이 지난 1월 4일,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걸 어제서야 알았다.
여든둘, 적은 나이가 아니니 어쩌면 당연히 올 일이었는데도 평소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갑작스러웠다.
하긴, 어떤 이들은 그런다.
"뭐야? 존 버닝햄이 아직도 살아 있었단 말이야?"
"존 버닝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대."
"응? 누구?"
이부자리를 펴면서 여섯 살 자두에게 말했더니 커다란 물음표를 얼굴에 가득 그리며 묻는다.
평소에 열심히 읽은 그림책이라도 작가의 이름까지 알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 오늘은 존 버닝햄의 책들을 읽어 보자!
"아~ 산타 할아버지!"
존 버닝햄의 책들을 가져와 침대에 늘어놓았더니 그제야, 아~ 한다.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 내내 존 버닝햄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참 열심히도 읽었다.
"나는 산타 클로스란다. 내 자루 속에는, 아주아주 멀고먼, 롤리폴리 산 꼭대기 오두막집에 사는 하비 슬럼펜버거에게 줄 선물이 아직 남아 있단다. 그런데 이제 곧 날이 밝겠구나."
열심히 선물을 나눠 주고 이제 쉬려고 누운 참에야, 한 아이의 선물을 빠트리고 왔다는 걸 알게 된 산타. 지친 순록들을 깨울 수 없어 혼자 길을 나선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전해 주러 고군분투하는 그림책이다.
비행기 조종사, 자동차 운전수, 오토바이를 가진 소년, 스키를 타는 소녀, 밧줄을 가진 등산가까지 모두, 산타가 '롤리 폴리 산에 사는 하비 슬럼펜버거'를 찾아가는 데 기꺼이 함께한다.
눈은 날리고, 길은 어둡고, 새로운 탈 것을 얻어 탈 때마다 콰당, 쿠당 넘어지고 부딪히지만 어쨌든 산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길을 간다.
그림책을 보는 아이는, 행여 산타가 선물 주는 걸 포기하면 어쩌지,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되는 모양이었다.
"엄마, 그래서 선물은 뭐야?"
하비 슬럼펜버거가 받은 선물이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사실, 중요하지도 않다. '산 꼭대기 오두막집에 사는 하비 슬럼펜버거'(책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반복되는 이 문구는 나중에는 아이와 합창을 하며 읽게 된다.)는 결국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게 되었고, 산 넘고 물 건너 집으로 돌아와 아침에서야 포근한 침대에 누운 산타를 보며 아이들은 안심하고 크리스마스를 기다릴 수 있게 된다.
힘든 일이 있더라도 주인공은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결국 행복해진다, 는 그림책의 서사 구조에 충실한 이 그림책이야말로 참으로 존 버닝햄다운 따뜻한 그림책이다.
다음은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1970년, 존 버닝햄에게 두 번째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선사한 책)를 읽는다.
"아저씨, 나도 따라가도 돼요?"
"나도 타고 싶은데."
"아저씨, 나도 데려가실래요?"
역시 계속되는 반복. 검피 아저씨는 누구 하나도 버려 두지 않고 모두 배에 태워 준다.
검피 아저씨의 작은 배에 올라탄 아이들, 개, 고양이, 돼지, 양, 닭, 염소는 얌전히 있지 못하고 결국 뒷발질에, 쿵쿵, 깡충거리다가 배가 기우뚱 뒤집히게 만들고 만다.
당연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니까.
"이제, 얘들 다 혼나겠다."
아이는 책을 보다가 또 마음이 아슬아슬해지는 모양이다. 검피 아저씨가 하지 말라는 짓은 다한 동물들이 혼나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 장을 넘긴 아이의 표정이 환해진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자. 차 마실 시간이다."
검피 아저씨의 식탁에는 따뜻한 차와 케이크가 준비되어 있고, 배에 탔던 모두는 둘러앉아 따뜻한 시간을 보낸다.
"잘 가거라. 다음에 또 배 타러 오렴."
검피 아저씨처럼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아이에게 화내지 않고, 받아 주고 또 받아 주는 그런 엄마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싶었지.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를 읽고 나면 내처지는 법 없이 끝없이 받아 주는 존재에 포근히 안기는 느낌이어서 참 좋다.
학교를 열 군데나 옮겨 다닐 정도였던 작가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지각 대장 존> 역시 널리 사랑받는 책이다.
날마다 열심히 학교로 향하는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악어, 사자, 파도 때문에 번번히 지각을 하고 만다.
이빨이 뾰족뾰족, 한눈에 보기에도 고루해 보이는 선생님은 존의 말을 믿어 주지 않는다.
그런 선생님을 답답해하던 아이는, "존이 선생님을 구해 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물었더니
"당연히 털복숭이 고릴라한테 잡혀가야지!" 한다.
예예, 그러시겠지요. 하하. 그림책의 세계는 복잡하지 않아서 좋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화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책 <사계절>은 아이 반응이 좀 신통찮다.
어른들은 참 좋아하는 책인데, 이야기가 없고 다소 밋밋하다 싶은 전개가 여섯 살에겐 힘들 수 있지.
한 장면 한 장면 넘길 때마다 역시 대단한 작가야, 싶어 탄성이 나오지만 자두랑은 좀 더 나중에 다시 보는 걸로! ^^
"엄마, 존 버닝, 뭐라고?"
"존 버닝햄."
"응, 그래. 그 존 버닝 할아버지한테 방석이랑 이불이랑 갖다 주고 싶다."
"어머, 왜? 돌아가셨는데?"
"응~ 편하게 누워 계시라고."
자두의 마음이 내 마음이다.
자신의 정신 연령은 다섯 살이라고 말했다는 작가답게,
존 버닝햄의 책은 단순하고 간결하고, 쉽다.
꾸밈이 없어서 담백하고, 따뜻한 터치로 이어지는 그림들은 넘치지 않게 포근하다.
이런 작가의 그림책을 보여 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존 버닝햄 할아버지,
아이들에게 좋은 그림책을 선물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존 버닝햄은 1936년 4월 27일 영국에서 태어났다. <서머힐스쿨> 출신. 첫 그림책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로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영국도서관협회가 해마다 전년도 그림책 가운데 가장 빼어난 작품에 주는 상) 수상. 그림책 작가 헬린 옥슨버리와 결혼했고, 평생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출간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