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어린이집에서 보낸 정월대보름 잔치
쟁쟁쟁 재재쟁쟁 풍물소리가 점점 커진다.
아이들은 꽹과리를 든 민들레 선생님을 따라 부나비처럼 뛰어다니고,
그렇다, 정말이지 부나비들 같다.
하냥 가볍게, 지켜보고 있으면 다치지 않을까 불안해지지만 조금만 편하게 바라보면 자유롭게 불타오르는 우리의 아이들.
오늘은 아이 어린이집에서 대보름 잔치가 있는 날이다.
"정월 이월에 드는 액은 삼월 사월에 막고~~~
삼월 사월에 드는 액은 오월 단오에 다 막아 낸다~~~
어루액이야 어루액이야 어기여차 액이로구나~~~"
액막이 타령을 부르며 어린이집 마당을 휘도는 풍물패를 보니, 아이들은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궁금해진다.
이십 년쯤 전에 실상사에서 대보름 잔치를 본 뒤,
대보름 잔치를 다시 본 것이 재작년, 자두의 어린이집에서였다.
그만큼 사라져 가는 풍습이란 얘기겠지.
실상사에서 본 대보름은 그야말로 마을 잔치였는데,
저 멀리 산봉우리에서까지 달집이 타오르는 걸 보고는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올해 여든이 되신 우리 엄마에게도 대보름 기억은 귀하다.
"시골 살 때야 대단했지. 설부터 대보름까지, 내내 놀았으니까.
한 해 통틀어 제일 좋았을 때가 아마 그 무렵이었을걸?
집집마다 다니면서 음식 나눠 먹고, 나물해서 이 집 저 집 다니고..
얼라들은 마카 다 불 들고 휘휘 돌리며 댕기지,
떡이고 뭐고 실컷들 먹었다.
설이고 보름이고 지나가면 고마 마음이 섭섭하다, 인자 놀 일이 없으이.
인자 그때부터는 일만 잔뜩 해야 했지."
겨우내 부족했던 비타민은 말린 나물들 실컷 먹으면서 채우고,
새봄이 오면 농사일로 허덕여야 할 심신을 미리 달래는 것이 대보름이었다.
오늘의 대보름잔치는 지난 겨우 내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펴고
어린이집에 새로 올 친구들과 첫 대면하는 의미가 크다.
아이들에겐, 온갖 소원을 잔뜩 써 넣은 소원지를 불에 태운다는 행위에서 오는 즐거움이 큰 듯했다.
불 앞에서는, 애나 어른이나 몹시 흥분하게 된다. 하하.
그리고 또 하나, 놋다리밟기!
앞 사람 다리 사이에 머리를 넣은 아빠들이 줄줄이 대령하면 아이들은 양쪽 어른들의 호위를 받으며 신나게 즈려밟고 달/려/간/다!
안 그래도 질주 본능이 하늘을 찌르는 우리 아이들,
아빠들 등을 살포시 밟으며 달리니 더욱 즐겁다.
놋다리밟기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아이들 다음으로 엄마들이 아빠 등에 올라갔을 때가 아닐까.
비명 소리 드높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저절로 놋다리가 무너지면, 이제 대보름잔치는 자연스럽게 다음 순서로 넘어가게 된다.
소원지를 태우고, 액막이 인형을 불태운다.
한 해 동안 무사히 살펴 주시기를 빌고, 그 불에 고구마도 구워 먹는다.
자두에게 무슨 소원을 빌었냐 물었더니,
"응, 해적이랑, 해골이랑, 또 해적선이랑 달라고 썼어."
대보름 달집 태우기도 크리스마스 트리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는 우리 자두.
소원을 듣고 모른척하기도 뭐하고, 이 일을 어쩌나.
해적에 완전 꽂혀 있는 아이는 크리스마스 때부터 뭘 물어 봐도 언제나 저 대답이다.
생일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쉽게도 쥐불놀이는 하지 못했다. 아이들 많은데, 불똥이 튀거나 다칠 수도 있으니까.
시골에서 휘휘 돌리고 놀던 쥐불놀이의 추억을 가진 어른들로선 조금 미안한 지점.
생각해 보면, 옛날의 어린이들은 물질적으로는 가진 것이 적었던 반면 어른의 간섭이나 제한에서는 훨씬 자유로웠던 것 같다.
오늘의 시간을 아이는 훗날 어떻게 기억할까?
"요즘 아이들이 전통을 멀리하고 또 재미없어 한다고요? 그건 100% 어른들 책임입니다. 전통의 중요성을,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 게 아니고 수직적이고 관료적인 체계의 유지를 가르치고 있으니 아이들이 멀리할 수밖에요.
전통이란 것은 이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즐기기 위해서 지켜온 것이라기보다는 긍정적 방향으로 전달되어진 것입니다. 그런 것을 재미없게 곡해하고 이상한 질서에 접목시키니 아이들이 이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른들이 잘못하기 때문에 전통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 일본 소학교의 어느 선생님의 말, yes24블로그 "jinos2223" 님의 블로그에서
그때 대보름잔치 참 즐거웠다,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신나는 시간이었다,
또 한 번 그런 시간 갖고 싶다, 뭐 이렇게 기억해 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아이와 액막이 인형을 같이 만들면서, 지난 한 해 안 좋았던 건 다 태우고, 올 한 해 좋은 일만 생기게 해 달라고 정갈한 마음으로 비는 시간,
참으로 고마웠다.
* 이러저러한 일들로 철 지난 포스팅이 되었다. 그러나 기록하고 싶어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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