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아이와 함께 산에 오르면 좋은 것들
심학산 올라갔어, 아빠랑 엄마랑.
나뭇잎이 잔뜩 떨어져 있었어.
땅은 질척질척.
으~~~.
좀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어.
쇠딱따구리도 봤어.
까마귀도.
새 먹이도 줬어.
땅콩이랑 아몬드랑.
잘 먹었을까?
- 2020년 2월 1일, 파주 심학산 올랐던 날
신종 코로나 유행으로 사람 많은 곳을 피하다 보니, 아이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식당에 밥 먹으러 가는 것도 신경 쓰이고, 아이들 그림 교실이나 요리 강습 같은 곳에 가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다. 한 번 들어가면 두 시간은 거뜬히 신나게 놀다 오는 블록방도 여러 사람 손이 닿는 곳이라 한동안은 가기가 힘들다. 눈뜰 때부터 방방 뛰어다니는 일곱 살 에너지 넘치는 아이와 무엇을 하면 좋을까? 궁여지책, 산에 가자!
“엄마, 왜 산에 올라가야 해?”
산 초입에서부터 입이 댓발 나와 있는 자두. 친구랑 같이 못 노는 것도 속상하니 그저 발에 채이는 돌멩이한테나 마구 화풀이한다. 올라가기 전에는 그러더니 막상 올라가기 시작하면 이것저것 보고 만지느라 정신이 없다. 나뭇가지도 주워야 하고, 나뭇잎 밑에 뭐가 있나 들춰도 봐야 하고, 새가 바위에 싸 놓은 새똥도 들여다봐야 하니 바쁠 수밖에.
다다다다 타타타타 틱틱
무슨 소리지?
한참을 이리저리 찾았다. 아, 저기! 쇠딱따구리!
참나무에 앉아 신나게 드러밍을 하고 있는 쇠딱따구리를 발견했다.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잎이 무성했던 여름 산에서보다 겨울 산이 새 관찰에는 더 좋다고 들었지만, 드러밍하는 쇠딱따구리를 정면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입을 떡 벌리고 딱따구리를 들여다보는 우리를 무심히 지나쳐 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저 새 좀 보라고 소리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아빠, 이제부터는 왜냐고 한번 물어봐.
알았어. 그럼 이제부터는 왜냐고 물어본다?
새는 왜 둥지를 만드는 거냐고 물어봐.
알았어. 새는 왜 둥지를 만들까?
아빠가 말해봐.
왜냐하면, 그래야 새가 마음 놓고 알을 낳을 곳이 생기니까.
나도 알아.
그런데 애 물어봤어?
아빠한테 듣고 싶어서.”
- <아빠, 나한테 물어봐> 中에서, 버나드 와버 글, 이수지 그림
"아빠,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한번 물어봐.” 라는 말로 시작하는 그림책 <아빠, 나한테 물어봐>는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이수지 그림의 매력이 한껏 살아 있는 책이다. 별스러운 사건 없이 따뜻한 대화로 이어지는 이 그림책은 단풍 곱게 물든 가을 풍경을 멋스럽게 전해 준다. 이런 산책, 이런 대화가 오가는 시간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만큼.
아이와 산을 오르면서 나누는 대화란 게 사실 그렇다. “엄마, 왜 새들은 저렇게 높은 데다 집을 지어? 춥겠다.” “신발 밑에 흙이 자꾸 달라붙어.” “겨울엔 벌레도 없는데, 새들은 뭐 먹고 살아?” “(먹던 과자를 내려다보며) 이거 좀 나눠 줘도 돼?” 특별할 건 없지만, 이곳이 아니라면 아이도 생각하지 못했을 궁금증들. 어른이 되어 가는 동안 하나씩 잃어 갈지도 모르는 호기심의 한순간을 기록해 두는 것은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먹이가 부족할 동물들을 생각해서 한 줌 집어온 견과류를 바위 위에 내려놓았다. 너무 많은 양을 두는 것은, 야생에서 살아가야 할 동물들에게 하면 안 되는 일이라서 아주 조금만.
“우리가 이거 두고 간 거 새들이 알까?”
“그럼! 다람쥐도 와서 먹을지 몰라.”
“잘됐다.”
산에서 보낸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은 아이에게도, 엄마와 아빠에게도 아주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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