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숀 탠의 그림책 <매미>
새벽마다 창가 방충망에 붙어 잠을 깨우던 매미 소리가 요 며칠새 좀 줄어든 느낌이다. 그 자리를 풀벌레 소리가 채운다. 바야흐로 매미의 시간이 끝나는 중이다. 말복이 지났고, 폭염주의보가 한창이긴 하지만 서서히 가을을 준비하는 것이겠다. 짝을 짓지 못한 매미들은 계속해서 목놓아 짝을 부르겠지만 한창 때보다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운 좋게 짝을 짓고 알을 낳은 뒤 생을 다한 매미들은 길거리에서 사람들 발에 밟혀 짓이겨지거나 개미들 먹이로 갈무리되거나 하겠지. 그게 자연이니까.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노랫말이 절로 떠오르는, 그 당연함이 새삼 사무치는 날들이다.
다른 해보다 올해는 더욱 매미들에게 마음이 많이 간다. 아무래도 껍질을 깨고 나오는 순간을 목격해서인 것 같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매미 잡을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올해만큼 매미를 많이 잡은 적도 없는 것 같다. 비가 오지 않는 많은 날들에 아이는 “매미 잡으러 가자!” 외쳤다. 너무 더울 때는 나가지 못하고, 어스름할 때 나가면 좋다. 채집통은 가지고 나가지 않는다. 잡았다가 바로 놓아줄 거니까. 그렇게 나간 길이었는데, “어, 엄마, 얘는 좀 이상해!”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과연, 이제 막 땅에서 올라온 매미가 나무를 기어오르는 중이었다. 우화가 끝나 빈 껍질로 남은 매미만 보다가 속에 매미가 들어 있는 것을 보았으니 “엄마! 엄마!” 부르며 졸라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우화하는 것만 보고, 꼭 놓아주겠다고 약속을 받은 뒤에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약 한 시간 30분 동안, 우리 세 식구 나무 앞에 붙어 앉아 매미가 치르는 산고를 눈앞에서 함께했다. “떨어지면 어쩌지?” “나오다 우리 보고 깜짝 놀라면 어떡해?” 걱정을 늘어놓는다. (그러니까 그냥 밖에 두자니까.) 그러다가도 금세 “엄마, 내가 얘 계속 키우면 안 돼?” 한다. 저도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다. 너무 밝은가 싶어 불도 꺼 주고, 콧김 때문에 방해가 될까 멀찍이 앉아서 기다렸다. 입김을 불어 주겠다는 아이를 말리느라 고생했다. 좋은 의도가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진 않는다는 걸 설명하려 애썼지만 아이가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다.
꼬깃꼬깃 들어 있던 껍질 속에서 머리가 나오고 등이 나오고 구겨졌던 날개까지 꺼내 마르기를 기다리는 순간, 놀라웠다. 장엄했다. 아름다웠다. 매미 날개 색깔이 그렇게 우아한 푸른빛인 줄 미처 몰랐다. 그 장면을 보고 나서, 아이가 그린 매미들의 색깔이 달라졌다. 온통 거무죽죽하게만 그리던 매미가 확 달라졌다. 그 또한 놀라운 발견. 그래서 무엇을 보고 겪고 느끼는지가 중요한 모양이다.
아이는 졸리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다가 매미가 날개 말리기 시작하는 순간까지 겨우 버티더니 잠들었다. 잠들기 전에, 매미랑 인사하라고 하고 일어나면 없을 거라고도 말해 줬다. “힝, 키우고 싶은데.” 볼멘소리하는 아이를 달래 재웠다. 아마도 매미 꿈을 꾸었겠지.
날개에 힘이 좀 생겼을 즈음, 매미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 나무에 놓아 주었다. 너도 참 고생이 많구나. 땅에서 그 긴 시간을 버텼는데, 하필 우리 눈에 띄어서 많이 놀랐지? 부디 땅 위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뜻한 바를 다 이루기를.
엄청난 그림책 <도착>의 작가 숀 탠이 내놓은 그림책 <매미>를 본다. 평생을 ‘소속감’이라는 것의 실체를 고민했던 작가답게, 이 책에는 인간들의 직장에서 일하는 매미가 등장한다. 매미는 십칠 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지만 승진도 없고, 회사 화장실을 쓸 수도 없으며, 정시 퇴근도 못 한다. 어떤 인간도 좋아해 주지 않는 직장에서 17년(보통 7년이면 땅 위로 올라오는 매미가 아니라 17년을 견뎌 한꺼번에 땅 위로 올라온다는 미국 중서부의 매미를 모티브로 했다 한다), 사무실 벽 틈에서 살다가 은퇴하는 개미를 위한 어떤 파티도, 악수도 없다. 매미가 회사 옥상에 올라가 난간 끝에 서서 머리부터 허리까지 쩍 쪼개지는 순간, 그래서 소름이 돋는다.
매미들은 모두 날아서 숲으로 돌아간다.
가끔 인간들을 생각한다.
웃음을 멈출 수 없다.
통쾌한 복수 아닌가. 말레이시아에서 호주로 이민 화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숀 탠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이 그림책은 불편하다. 따끔따끔 마음을 후비는 지점도 많다. 여름 내내 매미를 잡으며 신났던 아이는 이 그림책을 한 번 보여 줬더니, 다시는 안 본다 한다. 음, 이해할 만도 하다. 이 불편한 그림책을 나는 가끔 펴 보게 된다. 빨간 금으로 쩍, 갈라지는 그 순간을 다시 한 번 목격하고 싶어서다. 나에게도 이런 새로운 탄생의 순간이 준비되어 있기를 기다리는 마음이겠지.
불편하지 않은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매미 그림책이 보고 싶다면 장현정의 <맴>을 볼 일이다. 시원하게 담긴 매미 소리, 맴, 쓰르르르, 매애앰, 쓰르람, 매애, 트트트트트 하는 글자들의 파도, 나무들 사이로 불어가는 바람을 만끽할 일이다.
바야흐로, 매미들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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