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신나게 놀았지만 마음에 남은 것은 고요함
꼭 ‘겨울왕국’ 같지?
눈이 와서 집 앞에 나갔어.
엄마랑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었어.
엄마랑 나는 안 그렸어.
엄마랑 나를 그리면 눈이 잘 안 보이잖아.
나는 소나무가 제일 아름다워.
줄기에 세로무늬도 멋지지?
2020년 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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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보니 세상이 온통 하얗다. 올 겨울만큼 눈이 귀했던 때가 또 있을까?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계절이었다. 아이는 창 밖으로 보이는 눈세상을 그냥 넘기지 못한다. 당연하다.
“엄마, 나가자!”
발을 동동 굴렀다. 장갑에 모자에 스키바지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난분분 날리는 눈은 쌓이는 속도보다 녹는 속도가 더 빨라 보였다. 아이는 아랑곳없이 신나게 논다.
“엄마, 받아랏!”
조그맣게 뭉친 눈은 턱도 없는 곳에 뚝 떨어지고 말았다. 이번엔 엄마 차례다.
“내 눈 공 받아랏!”
아이는 까르르 도망다니고, 그 뒤를 허덕이며 쫓아가는 엄마. 5분도 못 돼 완전 방전이다. 아이를 구슬러 조그만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강아지가 뛰어와 뭉개는 바람에 아이는 망연자실, 그러나 “정말 죄송해요. 얘가 아직 4개월밖에 안 된 애라서요.” 개 주인의 말에 울지도 못한다. 자기보다 턱도 없이 어린 아가가 아닌가 말이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눈이 얼마나 신기했을까? 태어나서 처음 보는 눈사람이 얼마나 재미있어 보였을까? 좋아서 방방 뛰는 강아지를 보고 화를 낼 재간이 없었다. 울먹울먹, 그러나 눈물을 꾹 참는 일곱 살의 표정이 얼마나 귀엽던지!
생각해 보면 아이가 처음 눈을 봤을 때도 꼭 저랬다. 처음엔 조심스러워서 손만 겨우 내밀었다가, 다음 순간엔 발로 꾹꾹 눌러 보다가, 그 다음 순간엔 눈과 혼연일체가 되어 굴렀다. 눈이 오면 가장 신나는 건 애들이랑 강아지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집에 돌아와 그림을 그렸는데, 뜻밖에 주인공이 우리가 아니다. 당연히 엄마랑 자기를 그릴 줄 알았는데.
“눈싸움 하는 거 안 그리고?”
“응, 이거 그리고 싶었어.”
아이 마음에 남은 고요한 한 순간. 가만히 눈을 바라보던 짧은 순간이 그렇게 그림으로 새겨졌다. 아이의 그림을 보고 진심으로 감동한 순간이다. 특별한 움직임 없이도, 한 장면의 아름다움을 잡아내는 힘이 생긴 것 같아 대견했다. 또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간 것을 느낀다. 아, 가슴 뻐근하다.
이런 날에는 에즈라 잭 키츠의 <눈 오는 날>을 함께 읽으면 딱인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여기 어디쯤 뒀는데 어디 갔을까? 하긴, 안방, 서재, 아이 방 곳곳에 늘어놓은 그림책 더미에서 원하는 책을 바로 찾겠다고 생각하는 게 무리긴 하다. 할 수 없이 <케이티와 폭설>로 만족해야겠다. 물론, 이 책도 훌륭한 책이지! 빨간색 크롤러 트랙터 케이티가 폭설에 뒤덮인 마을을 누비며 “저만 따라오세요” 하는 이야기에 아이들은 푹 빠진다. 이렇게 멋진 빨간 트랙터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암. 케이티 덕에 마을 사람들은 눈속에서도 길을 찾고, 사람을 구하고, 배달도 했다. 한바탕 신나는 모험을 한 것 같다. 고맙다, 케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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