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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Feb 14. 2020

불안한 마음을 이해하는 것부터

_ 미장원에 처음 가던 날




"머리 깎으러 갔어.

가위랑 빗으로 머리 깎았어.


미장원 선생님이 찬영이 예뻐해.

사탕도 주고.

머리도 감겨 줘.     


난 이제 안 울어."     


_ 2020년 1월 31일        


아이와 처음 머리 깎던 날이 생각난다. 자두가 태어나 처음으로 미장원에 가던 날, 아이 아빠와 나는 초죽음이 되고 말았다. 영아를 데리고 미장원에 가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짐작하시겠지만, 미장원에서 아이들은 정말이지 엄청 운다. 맹렬하게 운다. 깜짝 놀랄 만큼 운다.


그나마 아이들이 편안해한다는 미용실을 뒤지고 뒤져 찾아간 것인데도 그랬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도 많고, 장난감 말을 타고 머리를 깎을 수도 있었다. 아이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머리 깎으러 가면 아가들이 대부분 운다는 걸 듣기는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머리를 깎기 시작한 순간부터 미용사가 두 손 들고 손을 떼기까지, 아마 겨우 2분에서 3분쯤 되는 시간이었을 텐데(심리적 시간으로는 30분도 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두는 곧 죽을 것처럼 울었다. 이러다 애 잡겠다 싶어서 결국 포기하고 돌아왔다. 그 짧은 순간에 아이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미용사도 완전 멘붕이 되고 말았다.

엄마도 아빠도 처음 겪는 일이라 어찌할 줄을 몰랐다. 도대체 왜?       




의외로 많은 아이들이 미장원에 가서 머리카락을 손질할 때 몹시 무서워합니다. 이는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까지도 잘릴 것 같은 불안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직 인지 기능이 덜 발달된 아이들일수록 이런 불안을 심하게 느끼는데, 피를 뽑으면 다시 생기고 머리카락을 자르면 다시 자라나는 환원의 법칙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신체에서 무언가 잘려 나간다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갖고 있으며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자기 살이 잘려 나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가위질이나 이발 기계를 무서워합니다. 실제로 머리를 자를 때 저항하다가 예기치 않게 살짝 베인 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이런 거부감과 공포가 크겠지요. 더군다나 뒷머리를 자를 때는 아이가 자기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불안할 것입니다.

_ <감정-불안한 아이를 위한 감정처방전>, 오은영, 65쪽    




그랬다. 알았다면 좀 더 차분하게 이런저런 준비를 했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아이를 괴롭힌 셈이라, 무척이나 미안했다. 오은영 박사는 인형놀이로 머리카락 자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주거나, 아이가 몸부림치지 않으면 절대로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계속 말해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아이가 계속 불안해하면 엄마나 아빠가 편안한 분위기에서 직접 잘라 주는 것도 좋다. 아이 어린이집 친구 중에도 미장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머리를 깎는 아이가 있었다. 바리캉을 사서 보자기를 씌워서 아이 머리를 직접 깎는 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아이가 미용사와 친해져서 낯설음을 줄여 주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내 머리 손질을 맡고 있었던 홍대 근처 미용실로 한 달에 한 번씩 아이와 함께 가기 시작했다. 집 앞에 미용실이 여럿이었지만, 차로 30분도 넘게 걸리는 미용실에 찾아간 것은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었다. 아이는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엄마와 편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미용사를 편하게 여기는 듯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의 머리도 잘라 본 경험이 많은 미용사는, 자두를 내려놓지 말고 엄마가 아이를 안은 채 머리를 깎게 했다. 머리 깎는 동안에도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고, 울면 토닥여 줄 수도 있어서 좋았다. 물론 보자기를 쓴다고 해도 엄마 옷이 온통 아이 머리카락 범벅이 되는 정도의 부작용은 감수해야 한다.


울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처음 머리를 깎던 날처럼 미친 듯이 울지는 않았다. 게다가 놀라운 속도로 머리를 깎아 주었기 때문에 부담도 적었다. 그때부터 아이와 함께 머리를 깎기 위한 홍대 나들이는 몇 년 동안 계속됐다.

지금 미용실은 네 살 때부터 다니고 있다. 미용실에서 처음 머리 감던 날, 어찌나 대견스럽던지! 두려움과 낯설음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모든 순간이 기적 같다.     


그림책 <머리하는 날>에는 난생 처음으로 파마를 하는 여자아이가 등장한다. 친구의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고, 떨리는 마음으로 미장원에 갔는데 그 결과물이 놀랍다. 머리를 하는 동안 아이가 놀라고, 얼떨떨해 하는 마음을 콕 집어 낸 작가의 발랄한 시선이 돋보이는 그림책이다. 아이와 이 그림책을 보면서 “너 맨 처음 미장원 갔던 날 말이야. 엄마랑 아빠는 진짜 울고 싶었어.” 이야기를 나눈다. 크크크, 낄낄낄, 그러면서 그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참 좋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 모든 순간을 설렘으로 만들지, 두려워 도망치는 것으로 만들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아이가 그런 순간에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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