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가 일 년을 살지 못하고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됐다고 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뭐든지 맘에 드는 쪽으로만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 나는, 그 부부가 일 년을 못 채우고 이사간다는 사실보다 ‘신혼부부가 선택한 집’이라는 사실에 더 집중했다. 어여쁜 신랑각시가 살 곳인데, 허투루 고르지 않았을 거라는 편리한 생각.
화장실 문을 안에서 잠그지 않고, 밖에서 잠그게 되어 있다는 걸 보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지. 내가 고른 옥탑방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집이었는지는 이사 다음 날 밝혀졌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데, 화장실 뒷쪽 문에서 달칵달칵 소리가 났다. 쥐? 바퀴벌레? 최악의 경우 취객? 아니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곧 조용해졌다. 서둘러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그제야 잠금 장치 방향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집 안에 있는 화장실인데 문 밖에 잠금잠치가 되어 있는 이상한 구조.
알고 보니, 그 화장실은 옆집과 함께 쓰도록 되어 있었다. 부동산도 집주인도 전 세입자도, 단 한 사람 그걸 나에게 말해 주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 구조의 집이 있다는 걸 듣도 보도 못한 나는 그저 내 성급한 선택이 부른 참사라고만 생각했다.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 서울에서 혼자 세 번째 얻은 집, 응암동 옥탑방 이야기다.
그 집은 보일러도 옆집과 함께 쓰는 구조여서, 내가 보일러를 켜지 않으면 옆집은 뜨거운 물도 쓰지 못했다. 그것도 이사한 지 한 달쯤 뒤에야 알게 됐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보일러를 좀 세게 튼 밤이었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 보니 옆집이라며 웬 아주머니가 예닐곱 살쯤 되는 아이와 함께 서 있었다.
“너무 뜨거워서 잠을 못 자겠어요.”
서툰 한국말로 이야기하며, 미안하게 웃던 그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사람이 미안할 일이 아니지. 나도 죄송하다며, 몰랐다며, 온도를 낮추겠다고 몇 번이나 허리를 숙였다. 내가 미안할 일이 아니지. 그런데도 한사코 문제는 우리들의 것이었다.
몽골에서 왔다고 했다.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일하러 나갔다 늦는 날이면 아이는 누구와 있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일이 버겁고 힘들었던 시절. 반 년을 못 채우고 그 집을 나오면서 차마 돌아보지 못했다. 새로 이사오는 사람이 나보다 더 세상을 잘 아는 사람이기를, 옆집 가족에게 도움되는 이들이기만을 바랐다.
창고를 개조한 집에서도 살아 봤고, 걸으면 저벅저벅 내 무게가 느껴지는 얇은 합판으로 지어진 옥탑방에도 살았다. 골목에서 문을 열면 와락 좁은 부엌이 달려들던 시장길 집에서는 화장실을 가려면 문을 열고 5백 미터쯤 뛰어야 했다. 창문 밖으로 사람들 지나다니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서 내내 문을 닫고 살았던 반지하에서는 불을 끄면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문에서 벽까지 한 걸음이면 끝났던 그 좁았던 반지하가 최악이었을까, 마당에 빨래를 널어놓으면 속옷만 행방불명되던 군부대 인근의 그 창고 집이 최악이었을까.
서울에 살게 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이런 데서도 사람이 살아?’ 하는 가슴 아픈 실감이었다. 분명히 나는 사람인데, 나를 사람이 아니라 월세 내는 존재로만 취급하는 서울이 섬찟해지는 순간들이 내게는 있었다.
“그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십만 원으로 한 달을. 치약도 휴지도 생리대도 아껴 쓰고, 아침엔 우유와 시리얼, 밤엔 호빵이나 식빵, 계란 한 판 사서 한 달을 먹고, 일주일에 한 번 제일 싼 찌개용 돼지고기를 사고, 늘 두부와 콩나물, 김치를 아껴 먹고 깍두기를 담가 먹으며, 친구도 못 만나고 친구도 못 만들고, 십원 백원 포인트를 쌓으며, 스물일곱, 스물여덟 살까지, 병원비 칠만원 가지고 이렇게, 아니 대여섯 번이면 삼십오만원에서 사십이만원. 다신 안 온다, 다시는.”
권여선의 단편 <손톱>에는 내년이면 스물두 살이 되는 소희의 스산한 삶이 담겨 있다. 보증금을 들고 집을 나가 버린 언니 때문에 빚을 갚으려 아등바등 애쓰는 소희. 다친 손톱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병원비 칠만 원에 깜짝 놀라 저런 말을 쏟아놓는다. 소희의 막막함에 한순간 압도되어 저 장면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집 같지 않은 집을 떠돌며 살았던 나의 이십 대, 그 위로받을 길 없던 절망이 솟아올랐다. 살아가기 위해 포기하는 것들은 영화 한 편이거나 커피 한잔이거나 뭐 그런 것들이어야 한다. 그것이 생리대여서는 안 되고, 친구여서는 안 된다. 그런 것들을 포기하면서 삶을 이어가야 한다면 그 사람에겐 구체적인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만화가 김소희의 <자리>를 읽으며 오래전 그 집들, 그 방들이 생각났다. 그런 곳들에서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살아나온 것은 기적이다. 도둑을 맞긴 했지만 신체적인 상해를 입거나 하진 않았고, 지하철역에서 몹시도 멀었던 대신 산 옆이라 공기는 좋았던 곳들. 그 시절 나의 현재를 버티게 해 주었던 친구들에게 새삼 고맙다. 김소희 작가에게 순이라는 좋은 벗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칸칸마다 사람들이 있다.
생활이 돌아간다.
자리를 찾아가는 일은 계속된다.”
만화 <자리>는 이렇게 끝난다. 겨울 냉기가 영혼까지 얼려 버릴 것 같던 목욕탕 집, 바닥이 뚫려 아래층과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던 집, 주인 할머니가 자기 방에서 같이 살자 하던 마당 집, 방 한가운데 놓인 자개농을 열었더니 변기가 떡하니 놓여 있던 집, 지하 주차장에 자리잡은 집, 실내에 고드름이 생기는 집.. 살면서 하나만 겪어도 많다 싶은 경험을 이렇게나 많이 겪어내다니. 겪지 않았으면 에이 설마, 거짓말, 소리가 저절로 나왔을 것만 같은 이상한 나라의 집들 이야기.
작가가 그려내 준 마지막 장면의 파란 하늘 동네 그림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까닭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절망을 습관처럼 장착하지 않고, 기어이 웃을 수 있게 만드는 힘.
오늘 같은 혹한에도 여전히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청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눈 감지 않는 것, 그것 하나뿐이지만 그것만이라도 하자. 오늘도 자기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 헤매는 이들을 기억하자. 물리적으로 추운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는 누구라도, 온기를 나눌 따스한 사람은 꼭 옆에 있기를,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