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으로 향하는 첫 발걸음
고기를 먹지 않겠다 결심한 것이 3년이 넘어간다. 어패류와 달걀, 유제품까지는 어렵고 최소한 육류라도 먹지 말자 다짐하고 더듬더듬 나아가고 있다. 고백하자면 고기를 완전히 끊지는 못했고 점차 줄여가거나 덜 선택하는 쪽이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고 불완전함에도 육류를 먹지 않는 ‘채식지향주의자‘라고 스스로를 정의하게 된 것은 책에서 읽은 한 구절 때문이다. “비건의 목적은 백퍼센트를 이루는 데 있지 않다. 지구와 동물들에게 끼치는 고통을 최소화하고 더 건강하고 윤리적인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있다.”
나는 설악산 아래 조그만 동네에서 자랐다. 오래된 기와집 앞마당에는 까맣고 하얀 털을 가진 뽀삐가 살았다. 빛바랜 사진 속에는 뽀삐 옆에 네 살 쯤 된 꼬마가 쪼그려 앉아 활짝 웃는 모습이 담겨있다. 나는 자주 뽀삐 목을 끌어안았고 눈을 보며 알 수 없는 대화를 시도했다. 동네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 들어오면 목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줄도 모르고 나를 향해 우뚝 서서 꼬리를 세차게 흔드는 강아지가 예뻤다. 밥을 주는 것도 아니고 산책을 시켜주는 것도 아닌데 강아지는 나를 사랑했다. 그렇게 사랑스럽던 개는 다섯 살을 채 넘기지 못하고 자취를 감췄다. 뿌옇게 먼지가 인 마당에는 주인을 잃은 작은 집이 텅 비어 있었고 깨끗하게 핥은 밥그릇이 바람에 나뒹굴었다. 엄마 아빠를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나에게 내 친구가 어디 갔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여섯 살 쯤 되었을 때 동네 아저씨들이 개를 잡는 걸 본적이 있다. 나무에 매달아 털을 토치로 태우고 몽둥이로 마구 때렸다. 멀리서도 뭘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동네 누렁이였는데 왜 저러는지 영문을 몰라 무서웠다. 이튿날 아빠가 소고기라면서 내 앞으로 밀어주던 고깃국을 먹지 않았다. 몸에 좋은 거라며 먹으라고 다그쳤지만 도무지 숟가락을 들 수 없었다. 고기에서는 불에 그을린 냄새가 났다. 국그릇 속에서 까맣고 하얀 뽀삐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 후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고 보신탕집 앞을 지날 때면 코를 틀어막고 재빨리 뛰어 건넜다. 하지만 그때조차 나는 연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개와 개가 아닌 동물들을 구분지었다. 개고기는 무의식적으로 거부하지만 그 외에는 의식을 가지고서도 잘 선택하는 이중성이 나에게 있었다. 진열대 위에 포장된 고기는 마치 과자나 아이스크림 같아서 손으로 뽑아 올리는데 이질감이 없었다. 동물과 고기 사이를 북반구와 남반구만큼 떨어뜨려 놓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을 정지하고 괴롭기를 거부했다.
고기를 쉽게 살 수 있고 고기가 들어간 메뉴를 파는 식당이 흔하다는 것도 한몫 했다. 그만큼 선택이 쉬워서 친구를 만날 땐 치킨이나 삼겹살을 먹었다. 직장인이 되어 회식을 할 때도 많은 인원을 수용하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은 역시 고깃집이었다. 그래도 가끔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다 “나 이제부터는 고기 안 먹을래!”라고 선언하면 늘 함께 고기를 굽던 친구들이 아우성이었고, 나 때문에 점심시간에 갈 수 있는 음식점이 줄어든 동료들이 한숨을 쉬었다. 동물을 먹는다는 죄책감보다 옆에 있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는 미안함이 더 컸던 나는 곧 선언을 중지하고 말았다.
그러다 우연히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을 읽고 소와 돼지가 어떻게 길러져 내 식탁에까지 올라오는지 그 경로를 알게 됐다. 살아 있는 돼지와 마트 냉장육 코너에 있는 돼지고기를 연결시키지 못했던 나는 그 사이에 단절된 과정을 이어 붙일 수 있게 되었다. 동물이 어떻게 고기가 되는지, 어떤 환경에서 길러지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 세세하게 알게 되고 나서 희미했던 의지에 색을 조금 입혔다. 비육식으로 가기 위한 두 번의 시도에도 하루를 넘기지 못했던 경험 이후 ‘못해낼 거면 시작도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도를 계속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다. 채식이라는 것이 완성을 향해 가는 것이지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걸 이 책이 알려주었다. 얼치기 채식을 시작하려는 나에게는 큰 격려와 의지가 됐다. 그때부터 매일 실패하더라도 매일 다시 결심한다. “비건의 목적은 백퍼센트를 이루는데 있지 않다. 지구와 동물들에게 끼치는 고통을 최소화하고 더 건강하고 윤리적인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