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로 작정한 이유
지금의 나에게 글쓰기라는 것은 울며 소리를 지르는 행위이다. 말로 표현하는 건 어렵다. 한번 하고 나면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너무나 조심스럽다. 누가 곤란한 질문을 하면 날카롭게 대답하지 못하고 희미하게 웃고 넘긴다. 참고 견디는 것을 제일 잘하는 나는 그러다 병이 났다. 우울증이었다.
인정받고 싶어 선택한 부서에는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기존에 하던 일도 중요한 부분에서는 정해진 방향이 없어 판단해야 할 것들이 많았는데 그 와중에 이 부서가 생긴 이래 한 번도 없던 전무후무한 사건이 터졌다. 단체 이름으로 성명서가 발표되었고 연일 기사가 올라왔다. ‘담당 부서에서는 뭘 하는 거냐, 가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를 방치하고 있는 거냐?’는 내용이었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무력했다.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사람은 두 손을 놓고 있었고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을까 묻는 내게 “그러니까 어쩌면 좋을까?”라고 되물어 왔다. 벽을 보고 말해서 반향어가 들리는 식이었다. 외롭고 힘들었지만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일할 때마다 그런 식이었는데 정작 큰일이 생겨도 마찬가지니 결국 나는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구나.’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주위 사람들이 도움을 주지 못할지언정 답답한 내 심정이라도 토로하며 분을 삭였어야 했는데 여전히 나는 입을 꾹 다문 상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뱉지 못한 말들은 독이 되어 서서히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왜 사는지, 사람들은 왜 웃는지, 나는 지금 살아있는 건지 죽어가는 중인지 의문을 가질 때가 많았다. 호기심 많은 나는 저편으로 사라졌고 껍데기만 남은 여자가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홀로 앉아있는 듯했다. 울고 싶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고 소리치고 싶지만 목이 잠겨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열심히 버틸 줄만 알았지 그러다 끊어질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살펴보는 데 미흡했고 주위에 도움을 청하는 데 인색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표현하지 못해서.
이제는 조금씩 글을 써본다. 말은 잘 못 해도 쓸 수는 있으니까. 썼다 지울 수 있고 수정할 수도 있고 말보다는 글이 조금 더 유연하니까. 글을 쓰다 보면 말도 편하게 할 수 있겠지 싶어서.
쓰고 싶은 글은 산더미인데 두서가 없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내 머릿속에서는 다 이해되는 일들이 활자로 내려앉으면 맥락이 어긋나고 의도가 닿질 않는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 생각을 남에게 이해시키는 일. 감정 숨기기에 제법 능숙한 나는 글에서도 감정을 숨긴다. 그렇게 숨긴 글은 읽는 사람에게 잘 가 닿지 않고 겉돈다.
이제는 숨을 수도 없고 숨길 수도 없다. 드러내 놓고 표현하기로 했으니까. 더 이상 표현하지 못하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생채기 내기를 거부한 나니까. 글은 내 것이고 이건 내 여백이니,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독백을 해 볼까. 빗장을 단단히 잠그고 있어 볕이 들지 않았던 오래된 광을 조금 열어볼까. 바늘만큼, 이쑤시개만큼 틈을 줘 볼까. 얇은 햇빛이라도 저 안까지 닿을 수 있도록. 겉으로 울지 못해 안으로 스민 눈물에 눅눅해지고 곰팡이 핀 마음이 약간의 볕을 쬘 수 있도록. 이 틈이 얼마나 벌어질지, 그 빛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가늠할 수 없지만, 지나온 길은 오답이었으니 이제 다른 선택지를 찾아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