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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이해할 수 있는 글

나를 떠나 타인에게 닿을 수 있도록

by 한걸음

글을 쓰고 합평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첫 번째 문단에서 두 번째 문단이 이어지지 않는데, 그사이에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이 문단은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은데 왜 넣으신 건가요?”

“왜 이렇게 생각하신 건지 납득이 잘 안 돼요.”


처음에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이해가 잘 되는데 뭐가 더 필요하다는 거지?’

‘첫 번째 단락과 두 번째 단락을 쓰면서 그 사이에서 내 감정을 효율적으로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귀신같이 알아챈 거지?’


일기처럼 나 혼자 볼 글이면 단락의 관계가 어떻든 구성이 어떻든 아무 상관 없다. 하지만 남이 읽을 글을 쓰고 있는 거라면 다른 사람의 비판을 잘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특히 나는 소모임 글쓰기를 하고 있는데 글을 쓰고 평가를 해주는 사람 대부분이 내 글을 이해하고 싶어서 이리저리 고민하면서 읽는다. 애정어린 독자가 글쓴이의 관점에 서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도 납득이 안된다는 것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었을 때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썼으니 잘 이해되지만 읽는 사람이 그렇지 않다면 의견을 충분히 수용해서 덧붙이고 설명하고 삭제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아닌 남이 잘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나온다.


물론 쉽지 않다. 이미 다 완성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뭘 더 어떻게 고치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래서 글을 평가할 때는 직선적으로 날카롭게 해주는 게 도움이 된다. “이 문장이 A를 말하는 건지 B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거나, “첫 번째 문장과 두 번째 문장 사이에 삭제된 감정이 있는 것 같다.”, “뒷부분에 이러저러한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추가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평가해주면 그에 맞춰서 고치면 된다. 하지만 두루뭉술한 평가에는 어떤 기준으로 고치면 좋을지 전혀 감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글을 읽고 정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주는 사람이 고맙고, 동시에 나도 남의 글을 읽을 때 성심성의껏 읽고 구체적으로 피드백하려고 노력한다. 그건 굉장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애정 없이는 하기 힘들다.


혼자 쓰는 글보다 함께 쓰는 글이 소중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너머를 봐주는 사람, 나는 그런 의도를 가지고 쓴 게 아닌데 더 의미 있게 해석해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삭제한 문장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고이 품에 안은 채 다시 자판 위에 손을 올린다. 남이 이해하기 쉬운 글은 나에게도 더 부드럽게 다가온다. ‘이만하면 훌륭하지.’하며 자화자찬했던 문장을 해체하고 쪼개 다시 새로운 문장을 만든다. 매끄럽고 유려한 글보다 더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와 닿는 글이다. 내가 떠나보낸 글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 닿아야 새로운 의미가 생긴다. 내게 머물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생명력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 다시 생생한 비판을 눈여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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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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