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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아도, 글쓰기

엄청난 사건이 있을 때만 글을 쓰는 게 아니야

by 한걸음

브런치 작가로 등록되고 나서 첫 작품은 글쓰기에 관한 것으로 해야겠다 정하고 7편의 글에 대한 목차를 만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브런치 연재는 기본이 10편인가 봅니다. 7편으로 시작해서 완결을 했지만 브런치 알림은 계속 다음 편을 쓰도록 압박하고 있어요. 새로 시작하는 여러분은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브런치 연재는 기본이 10편이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8화 연재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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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다. 영상보다 오디오가 편한 나는 누군가가 적당한 톤과 적당한 속도로 말하는 걸 좋아한다. 그중에 최애를 꼽으라고 한다면 '비혼세'다. '비혼으로 사는 세상'의 줄임말인데 팟캐스트의 마지막 마무리 인사멘트는 “여러분~ 혼자 사세요!”다. 이 얼마나 새롭고 독창적인가! 결혼에 속해 있지 않는 사람들에게 해방을 주는 해방촌에서 사는 비혼세(곽민지)라니!


팟캐스트 비혼세를 운영하는 비혼세는 예능작가이고, '걸어서 환장 속으로',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등의 책을 집필한 출간 작가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팟캐스트도 한다. 그것도 매주 금요일 저녁 어김없이 따박따박 한편씩 에피소드를 올리고 있다. 2020년 2월 13일 첫 방송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업데이트를 미룬 적이 없다. 팟캐스터가 자기 직업이 아니고 일을 하고 출장도 다니면서, 반려견 정원이도 돌보면서, 친구들도 만나면서 어떻게 이런 개근이 가능한지 놀라운데 다른 팟캐스트들은 자체 방학을 가지기도 하고 하다 그만두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녀의 의지와 실행력이 놀랍다.


방송을 듣다 보면 대부분은 집에서 녹음을 하는데 가끔은 친구집에 녹음 장비를 들고 가서 하기도 하고, 시간이 없으면 반려견 정원이 산책을 시키면서 한다. 어떨 땐 LA 출장을 떠나는 공항에서도 하고 최근엔 퇴근하는 자신의 차 안에서 녹음을 해서 송출하기도 했다. 신박하다! 어디서든 녹음을 할 수 있다는 이 유연한 사고라니! 그리고 어떻게든 구독자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이라니!


나는 글을 쓸 때 나에게 일어난 대단한 사건이나 특별한 일들, 감동적이거나 슬픈 것들에 대해서 써야 한다는 나만의 허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쓸게 별로 없다. 나의 일상이 특별하지 않고 남들과 비슷하게 흘러가며 내가 느끼는 건 특별할지 몰라도 남이 보기엔 '나도 그런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들과 다른 글을 써야 한다는, 쓰고 싶다는 문턱이 앞으로 나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남들과 비슷한 삶이기에 공감할 수 있고, 남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내가 느끼는 특별한 감정이기에 다를 수도 있는 건데 어떤 손에 꼽는 에피소드를 글로 써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팟캐스트 비혼세처럼, 어디에서든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어야 매주 글쓰기가 가능할 것이고 연재가 될 것인데, 에세이를 쓰겠다고 결정하고 독특한 에피소드를 고르고 있는 모습이라니.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마음을 열고, 나의 소소한 일상도 글로 풀어내봐야겠다. 일기 같은 나만의 갇힌 일상은 곤란하지만, 다른 사람도 공감할 수 있고, 아 저럴 수도 있겠구나 무릎을 치기도 하는 그런 소소한 글도 가능하지 않을까. 나의 일상은 타인과 비슷하지만 또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글이 될 수도 있으니까. 모든 사람의 하루는 평범하지만 또 특별하니까. 그런 하루가 모여 나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거니까. 소소한 하루도 허투루 넘기지 않도록, 자잘한 글로 써 내려가 나의 생각을 가다듬는 시간으로 삼기로 한 글쓰기니까. 마음을 내려놓고 뛰어난 글쓰기가 아니라 일상의 글쓰기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사소해도 괜찮다. 그 무엇이라도 글을 쓰기만 한다면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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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