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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과 연결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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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

직업 특성상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많이 만난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분들인데 사연도 제각각이라 글로 쓰면 몇 페이지는 되겠다 싶은 사람들이 간혹 있다.

이들의 삶을 글로 쓰는 건 어떨까?

물론 개인정보와 특정인을 구분해 낼 수 있을 정도의 자세한 얘기는 제외하고.

독립출판으로 펴낸 원도의 「경찰관 속으로」를 보면 경찰로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경찰로 일하는 게 어떤 건지 어떤 사람들이 경찰서로 찾아오거나 경찰을 마주치게 되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어서 흥미롭다.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 이야기 1 -

혼자 살던 노인이 사망했다. 배우자와는 이혼한 지 오래고 자녀가 있지만 연락을 끊고 살았다. 가정폭력과 알코올중독이 문제였다. 그 누구도, 본인조차도 자녀들을 원망할 수 없었다. 사망한 노인의 전화기에는 광고 홍보성 전화번호만 가득할 뿐 최근 통화 내역에 사망을 알릴만한 사람의 연락처를 찾을 수 없었다. 사망을 확인한 경찰과 구급대원은 시신을 병원으로 이송했고 병원에서는 내게 가족을 찾을 수 있는지 전화로 물어왔다. 가족의 연락처를 알더라도 직접 병원에 알려줄 수 없어 번호가 남아 있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이런 고통스러운 가족사를 가지고 있는 자녀는 대부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모르는 번호라 일부러 받지 않기도 하고 번호를 바꾸었거나 사용 중지된 경우도 허다하다. 가까스로 통화가 되더라도 부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대체 자신에게 왜 이런 전화를 하는지 화를 내거나, 본인은 그런 사람을 아버지로 둔 적 없으니 무연고 장례를 치르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딸은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가 사망해서 유족을 찾고 있다고 얘기하니 가만히 말을 듣고 있는 숨소리에서도 떨림이 전해졌다. 시신 인수를 하지 않겠다고 해도 이해할 생각이었다. 잠시 말이 없던 수화기 저 너머에서 마침내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실지 모르지만, 아버지하고 연락 안 하고 산 지 오래됐어요. 사실 아버지가 없다 생각하고 어머니하고 언니, 저 이렇게 셋이 살았거든요. 힘들었지만 그래도 언니하고 저 잘 컸어요. 남 부럽지 않은 직업도 갖게 됐고요. 아버지 얘기를 이렇게 듣게 될 줄은 몰랐네요. 우리 가족한테는 아버지가 너무 큰 상처라 갑자기 이렇게 얘기를 들으니 너무 당황스럽고 화도 나고.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혼자 돌아가셨다고요. 담당자분께 이런 얘기할 건 아닌데 죄송해요. 제가 두서가 없죠. 마음 정리하고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한데... 많이 바쁘실 텐데 이렇게 오래 통화해서 죄송해요. 그래도 제가 자식인데 아버지 장례는 치러야겠죠? 너무너무 미워했던 사람이지만 마지막으로 자식 된 도리라고 생각하고 병원에 찾아가 볼게요. 어쨌든 이렇게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

마음이 얼마나 헛헛하고 쓸쓸하고 화가 날까. 그래도 스스로 잘 컸다고 말할 정도로 당당한 삶을 살고 있으니 다행이다.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자신의 삶을 끝없이 추락시키는 사람도 많은데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자신의 삶을 그 지점으로부터 다시 일으켜 세우다니 정말 잘했다.

- 이런 방식으로 -

나의 일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 나의 시각을 잇대어 글을 쓰면 그것도 의미 있고 흥미롭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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