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머물고 싶어지는 포르투갈의 수도 여행
누구에게나 최고의 여행지가 있죠, 어딜 가도 그곳과 비교하게 되는. 리스본은 제게 그런 곳이었어요.
도시적인 편리함과 세련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낭만이 가득하고, 휴양지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도 나는 곳. 앞으로 오랜 기간 제 여행의 준거점이 될 것만 같은, 리스본의 추천 스팟을 소개할게요.
평생 기억날만한 페루 음식
리스본이 제 인생 최고의 여행지라면, A Cevicheria는 제 인생 최고의 식당이죠. 페루의 세비체(Ceviche)라는, 회에 레몬즙, 양파, 올리브오일 등을 첨가해 절여 만든 음식을 주로 만드는 식당인데요.
셰프들이 모두 젊어 활기찬 가운데에도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곳이었어요. 훈남 셰프들이 도제식 교육을 받으면서 음식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느낌이었달까요.
거기에다가 거대한 문어를 천장 위에 배치하는 과감한 인테리어에, 바다를 연상시키는 하얗고 파란 색감까지. 분위기만으로도 맛있을 만한 곳이었는데 음식도 예술 그 자체였죠.
위 사진은 저희가 시킨 Quinoto do Mar, 즉 Sea Quinoto예요. 참고로 퀴노또는 퀴노아(quinoa)라는 곡물을 재료로 만든 리조또랑 비슷한 음식이랍니다. 저희가 시킨 건 그중에서도 해산물 리조또인 셈이죠.
그런데 이 음식, 해변이랑 닮지 않았나요.
실제로 하얀 문어 거품은 하얀 파도, 퀴노아는 모래, 그리고 이름이 기억 안나는 저 채소들은 해조류를 형상화한 거라고 설명해주더라고요. 과장 살짝 보태서, 그림을 먹는 기분이었답니다.
여기 메인 음식인 세비체는 또 어떻구요.
저희가 먹은 Tuna Ceviche, 즉 참치 세비체에는 참치가 회로 들어가고, 비트(beetroot)와 푸아그라(fois gras), 고수 등등을 섞어 소스를 만들어내는데요. 소스가 특이하면서도 매력적이에요.
푸아그라가 들어가서 고소한 맛이 나는데 또 고수 덕에 깔끔하게 떨어지거든요. 색도 비트 덕분에 보라색이라 독특해서 시각적인 재미도 있구요. 먹으면서 행복하단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요.
사실 이 곳의 음식은 많이 이국적인 편이어서, 남편의 한국식 입맛에 완벽히 맞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럼에도 남편은 한국에서도 여기가 계속 떠오른다고 하더라구요.
분위기나 음식의 깊은 맛 같은 게 인상적이었다며, 한국에도 세비체 식당이 있는지 찾아보기까지 했답니다.
참고로 여기는 예약을 받지 않아서 이름을 써 놓고 대기해야 해요. 저희는 저녁 7시 반쯤 갔는데 30분 정도 대기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줄이 더 길어지는 느낌이었어요.
차라리 좀 일찍 저녁 6시쯤 가면 어떨까 싶은데, 사실 30분을 대기해도 전혀 아깝지 않은 분위기와 맛이었답니다. 참고로 식당 자체는 좀 작은 편이에요.
제가 추천드리는 코스는 A Cevicheria에서 저녁을 먹은 후 R. Dom Pedro V 거리를 따라 Mu라는 맛있는 아이스크림 집에 들러서 후식을 먹고, 알칸타라(Alcantara) 언덕에서 해질녘부터 야경을 보는 거예요.
알칸타라 언덕에서 보이는 하얗고 네모난 집들이 잔잔하게 참 예쁘거든요.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요.
남편이 리스본에 처음 갔을 때 여기서의 야경이 가장 좋았다고 많이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저 역시 가장 인상 깊었던 풍경이었어요.
한국에서도 그리워할 포르투갈 요리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벨렘 지구로 가려다가 우연히 발견한 보석 같은 곳이에요. 치아두(Chiado)의 Carmo Square이라는, 라일락 꽃향기가 가득한 작은 블록에 위치하고 있었답니다.
여느 포르투갈 식당답게 인테리어는 감각적이고, 일단 음식 맛이 정말 좋아요.
특히 남편이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맛있다는 말을 연발했는데, 여행 다녀온지 1년이 넘은 지금도 그 맛을 종종 그리워하곤 해요. 위의 A Cevicheria보다는 한국인에게 더 친숙한 요리를 하는데, 그러면서도 새로움을 간직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희는 늦은 점심에 가서 스타터 격인 타파스(tapas)만 두 개만 시켰는데, 양이 결코 적지 않았어요. 거기에 맥주랑 식전빵까지 같이 먹으니 배가 꽤나 부르더라구요.
참, 여기는 비록 타파스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스페인이 아닌 포르투갈 요리를 하는 곳이에요.
남편이 시켰던 새우요리는 짭쪼름한데 고수가 들어 있어 상큼했구요. 제가 시킨 버섯 요리는 무겁고 느끼할 줄만 알았는데 버섯과 베이컨의 조화가 굉장히 좋았어요.
새우요리가 저희 둘 모두에게 특히 만족스러웠는데, 저는 나중에는 식전빵을 추가로 시켜서 국물까지 남김없이 싹싹 비웠고, 남편은 고수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맛있다며 감탄하면서 먹었거든요.
불과 며칠 전에도 저한테 또 거기서 새우요리 먹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정도예요. 아무래도 남편에게는 맛으로만 따지면 여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아닐까 싶어요. 저 역시 그립네요.
Carmo Restaurant은 리스본의 다른 레스토랑에 비해서 세련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소박한 옛날 식당 같은 곳인데 그러면서도 묘하게 감각적인 느낌이 드니 참 신기하죠.
타파스만 먹어본 게 아쉬워서 메인 요리를 먹으러 또 한 번 들르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러지 못하고 돌아와서 아쉬워요. 다음에 또 리스본에 가게 된다면 반드시 다시 방문할 곳이에요.
힙(hip)함 그 자체, 인더스트리얼의 정수
저희의 리스본 여행은 LX Factory가 있었기에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여긴 저희가 이번 포르투갈 여행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받았던 곳이며, 방문했을 때 가장 즐거워했던 곳이에요.
원래 여기는 1846년에 문을 연 크나큰 방직 공장이 있던 곳이었다고 해요. 공장이 문을 닫은 후, 언제부턴가 온갖 예술가들과 IT 종사자들이 모여들면서 2008년부터 방직 공장이 이른바 '크리에이티브 공장'으로 탈바꿈했다고 하네요.
6900평 정도의 크기라 거의 하나의 지역 내지 지구 수준인데요, 감각적인 상점, 음식점, 코워킹 스페이스들이 모두 모여 있어요.
힙(hip)하다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예술적이면서도 재치 있고, 인더스트리얼한 느낌이 나는 곳. 공장의 겉면을 그대로 보존해서 더 멋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요새 핫한 성수동 같달까요. 다만 성수동보다는 모든 것들이 더 밀집되어 있고, 스케일도 더 크고 거친 느낌이에요.
리스본을 다녀온 직후에 대림창고가 유명해져서 방문했었는데, LX Factory와 비교하면 대림창고는 스케일도 작고 굉장히 소프트하게 느껴졌어요.
LX Factory는 구석구석 돌아볼 가치가 있는 곳이니 늦어도 2시쯤에는 여기 도착하시길 권해요. 저희는 해지기 직전에 가서 욕심만큼 많은 곳들을 둘러보지 못했거든요.
쇼윈도로만 봐도 특색 있는 인테리어와 제품이 가득한데, 그 안에 들어가면 느낌이 또 다를 거예요.
만약 상점 구경이 내키지 않으시더라도 "Ler Devagar"라는 서점은 꼭 들러보세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10대 서점에도 들었을 만큼 멋진 곳이에요.
엄청나게 높은 천장 가운데에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소녀가 있고, 건물 가장자리를 멋스러운 철제 계단들이 빙 둘러싸고 있죠.
중간중간 마시고 먹을 곳도 있어서 사실은 서점이라기보다 복합 문화 공간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서점 이름인 "Ler Devagar"가 '천천히 읽어라(Read Slowly)'라는 뜻이라는데, 그 말에 부합하게 천천히 즐기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같았어요.
식사로는 이 곳의 1300 Taberna라는 식당의 평이 가장 좋더라구요. 하지만 예약이 꽉 차서 먹을 수가 없었어요. 분위기가 정말 좋아서 꼭 식사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고, 손님이 너무 많아서인지 직원들이 좀 불친절해서 아쉬웠어요.
대신 A Praca라는 곳에서 먹었는데 이 곳도 꽤나 만족스러웠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Lx Factory 근처의 Coworklisboa나 Village Underground라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있는 곳들도 함께 방문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Coworklisboa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무료 체험을 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고, Village Underground는 스웨덴에서 만든 코워킹 스페이스인데 2007년 런던에 상륙한 이후 2014년에 리스본점을 오픈했다고 하네요.
건축물도 멋지고 중간중간 행사도 하는 걸로 알고 있어서 맞춰서 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외부인 출입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요.
사실 저는 포르투갈 여행에서 포르투를 많이 기대했었고, 리스본에 대한 기대는 크게 없었어요. 그런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매력 있는 곳이더라구요.
포르투보다 도시 경관이 예쁘지는 않지만 도시적인 세련됨과 감각적인 느낌이 가득한데, 그러면서도 또 바다도 있고 언덕에서 보는 경관도 아름다워요. 위 사진처럼요!
살면서 가장 행복하고 설렜던 남편과의 연애초를 계속해서 떠오르게 했던 곳, 그래서 다시 연애하듯 여행했던 곳. 리스본에는 꼭 다시 가서 오랫동안 머물고 싶어요.
번외 1)
저는 추천하지만 남편은 저만큼 좋아하지는 않았던 곳들을 짧게 소개할게요. 남편의 평에 의하면, '일부러 찾아갈 필요는 없지만, 근처에 간다면 들를만하다'라고 해요.
하나는 Cozinha Urbana라는 아시안 퓨전 음식점이에요.
Miradouro da Senhora do Monte라고, 리스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유명한 언덕이 있거든요. 거기 올라가시는 길에 자리 잡은 언덕배기 식당이에요. 선곡도 훌륭하고, 젊고 예술가적인 느낌이 가득해서 여행 온 느낌이 물씬 나요.
샌드위치와 버거의 사이에 있는 듯한 음식을 하는데, 돈까스, 타코야키, 후무스(Hummus) 등 버거 이름이 친숙해요. 저는 맛도 정말 만족했는데, 남편은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후식으로는 초콜렛 케이크를 먹었는데요, 바다소금과 핑크페퍼가 뿌려져 있었어요. 소금과 후추가 초콜릿 케이크와 어우러지면서 초콜릿 맛을 더 깊게 느끼게 해 줘서 매우 만족스러웠답니다!
하지만 남편은 소금과 후추가 없는 부분만을 골라 먹었으니.. 평소 입맛을 고려하고 시키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른 식당들로는, Alcantara 언덕 바로 근처에 있는 'the decadente'와 Alfama의 Bistro & Brecho Gato. The decadente는 상당히 트렌디하고 맛도 괜찮구요, Bistro & Brecho Gato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좋아했는데, 남편은 이 두 식당은 추천할만하지는 않다고 하네요.
번외 2) 보통 에그타르트 먹으러 Belem지구로 많이 가시는데, 저희는 거기서 먹은 에그타르트보다 Mantegigaria라는 시내의 에그타르트 집에서 먹은 게 더 맛있었어요. 실제로 평도 좋은 곳이구요!
또 포르투갈의 에그타르트에는 시나몬 맛이 많이 나니 참고하세요. 저는 시나몬을 안 좋아해서, 마카오에서 먹었던 에그타르트가 더 입맛에 맞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