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손님

by 민지쿠

내가 살고 있는 집은 건물 구조가 조금 특이한 편이다. 총 3층짜리 빌라인 이 건물에는 대문이 따로 있는 1층에 주인집 할머니가 거주하는 공간이 있고, 별도의 입구로 들어가면 세입자들이 사는 공간이 나온다. 내 방이 위치한 곳은 주인집 할머니가 거주하는 공간의 바로 위층으로, 창문 밖으로 주인집 할머니의 작은 마당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주인집 할머니는 언젠가부터 종종 자신의 마당에 나타나는 고양이 손님들을 위해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자주 나타나는 고양이는 턱시도 고양이와 삼색 고양이로, 처음에는 경계심이 가득하던 이 두 녀석들은 어느새 1층 마당 공간이 좁다고 느껴졌는지 점차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 확장된 영역에 바로 우리집 테라스가 있었다. 할머니의 작은 마당에는 큰 감나무가 한 그루 있어 우리집 창 밖으로는 감나무가 사계절동안 싹을 틔우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열매가 익어가고, 잎이 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매일 변화하는 액자 역할을 하고 있는데 두 녀석들에게는 이 감나무가 사다리 역할을 한 모양이다.


작년 3월 즈음 재택근무를 처음 시작하면서 나는 왠지 테라스에 작은 상추밭을 만들고 싶다는 야망이 생겼다. 가로로 길쭉한 상추 재배용 화분을 하나 사고, 대담하게도 상추 모종이 아닌 씨앗을 사서 심고 애지중지 기르기 시작했다. 식물 킬러로서의 명성이 자자한 내가 어찌저찌 상추를 길러내긴 했는데, 일이 바빠져 다시 집보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길러놓은 상추를 모두 뿌리 채 뽑아서 다 먹어치우고는 그대로 화분을 방치해 두었다.


그런데 이 방치된 화분이 고양이들 눈에는 자기 몸에 딱 맞는 푹신푹신하고 안락한 휴식 공간쯤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열면 기다란 화분에 몸을 딱 맞춰 식빵을 굽고 있는 녀석들을 언젠가부터 종종 마추치게 된 것이다.


나는 이 귀여운 손님들을 위해 종종 간식이나 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창문에 가까이 다가가는 기척만 보여도 쏜살같이 달아나던 녀석들은, 츄르의 마성에 빠져 그만 내가 창문을 여는 소리만 들어도 득달같이 달려오는 파블로프의 고양이들이 되고 말았다. 창문을 여는 소리나 닫는 소리나 크게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 창문을 닫을 때에는 반응이 없는 걸 보면 고양이들만 느낄 수 있는 다른 느낌이 있는가 보다.


두 녀석들 중 삼색이는 특히 경계심이 많이 풀어셔 창문을 열어도 도망가지 않고 슬쩍 내 손에 자신의 머리를 부비기도 하고, 어째서인지 점점 말이 많아졌다. 어라? 그러고보니 왠지 점점 배가 커지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윗집 아랫집을 오가면서 밥이며 간식까지 양껏 먹어대니 살이 찐 거라고 생각했는데, 얼굴은 자그마한테 배만 볼록한 것이 수상했다. 봄철은 길고양이들이 임신을 많이 하는 시기라고 하던데, 아무리 봐도 임신을 한 게 아닌가 싶어 좀 더 신경써서 간식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4월 9일 금요일에는 날씨가 유난히 화창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열었는데 파블로프의 고양이들은 기척도 없었다. 요 녀석들이 왜 안오지? 라고 창문 밖을 두리번거리며 내다보는데 주인집 할머니의 통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나 했던 삼색이는 임신을 한 게 맞았고, 할머니도 일찌감치 그 변화를 눈치챘다. 그리고 언제가 될 지 모르는 출산을 위해 할머니는 마당 한 구석에 작은 박스집을 만들어두었고, 그 집에서 삼색이는 새끼 6마리를 낳았다.


열어둔 창문 안으로 할머니가 수시로 마당을 드나들며 엄마가 된 삼색이를 걱정하는 소리가 들어왔다. 따스한 마음은 전염력이 강해서, 금새 주변까지 훈훈하게 데워주는 힘이 있다. 나는 그저 작고 귀여운 생명체들이 1층 어딘가에서 꼬물거리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엄마가 된 삼색이가 홀쭉해진 몸으로 다시 우리집 테라스를 방문했다. 한동안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손님의 깜짝 방문에 놀란 나는 서둘러 준비해 두었던 간식을 다시 꺼냈다. 지켜야할 것이 생긴 녀석은 전보다 조금 더 예민해졌다. 정신없이 먹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귀를 쫑긋거리며 남겨진 새끼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를 걱정하는 듯 했다. 빠른 속도로 식사를 마친 삼색이는 곧바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이 정도면 우리집 테라스를 고양이 식당이라고 이름 붙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세상에서 가장 간편한 도피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