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선의 안과 밖

by 민지쿠

대개의 경우 나에게 동선은 짧아질수록 좋은, 꼭 필요하지는 없는 일로 인식된다. 집에서 회사까지 가는 동선, 퇴근 후 옷을 정리하면서 움직여야 하는 동선, 설거지 후 그릇을 정리해야하는 동선, 청소기를 돌리는 동선, 퇴근 후 집 근처 맛집에서 미리 주문한 음식을 픽업한 후 식탁까지 도달하는 동선, 눈 앞에 보이는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러 가는 동선, 하루에 더 많은 관광지를 들르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동선까지. 동선이라는 것은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니, 목적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그 안쪽에 있어야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생각이 아닐까.


특히나 움직임이라는 영역에서 게으름뱅이인 나는 한 번 움직이는 김에 최대한 많은 일들을 처리해놓고 싶어하는 터라, 언제나 계획을 세울 때 가장 크게 고려하는 것이 바로 '어떻게 하면 동선을 최대한 줄일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다. 동선이 줄어들어 확보하는 시간만큼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학교와 집을 오가는 동선을 줄이기 위해 학교 열람실과 가까운 곳에서 자취를 하고, 볼일을 보러 나갈 때에도 들러야 할 곳들을 미리 지도에 찍어놓고 가장 최단 거리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궁리하고, 여행 계획을 세울 때에도 역시 동선은 최대한 짧아질 수 있게 계획을 세우는 편이다. 그리고 언제나 동선 바깥으로 나가지 않도록 지도를 살피며 걷는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기억에 오래 남는 예상치 못한 즐거움은 언제나 계획하지 않았던 동선의 바깥쪽에서 일어났다.


가낭 강렬하게 남아있는 여행 기억 중 하나는, 친한 동생과 함께 여수 여행을 갔다가 길을 잃고 헤맨 끝에 무려 엑스포대로 다리를 걸어서 건넌 기억이다. (그 때 당시에는 그 다리가 이순신 대교라고 굳게 믿고 건넜던 것 같은데, 지금 글을 쓰며 다시 지도를 찾아보니 아무래도 엑스포대로가 맞는 것 같다.) 운전을 할 줄 몰라 뚜벅이 여행을 했던 우리는, 숙소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관광지의 야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환상적인 야경을 감상한 후 숙소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차편을 알아보는데 아뿔싸! 지방은 버스가 일찍 끊긴다는 사실을 그만 간과해 버린 것이다.


두 번의 택시 승차거부를 당하고, 주변을 아무리 배회해도 무언가를 타고 숙소로 돌아갈 만한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무모하게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선택을 했다. 아마 혼자였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는데 그 날은 이상하게 비도 오락가락하고, 아침부터 정말 '다이나믹'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일들을 많이 겪어서 아마 다리를 걸어서 건넘으로써 다이나믹 여행의 절정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한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그 다리를 건너는 내내 뭐가 그렇게 즐거웠는지 끊임없이 브이로그를 빙자한 영상을 찍으면서 정신없이 웃어댔다. 거의 30분을 넘게 다리 위를 건너면서 우리는 하멜 등대를 발견하고 왠지 또 한바탕 웃었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다리 건너에 있는 피자집에 들어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이 기억은 언제나 웃으면서 꺼낼 수 있는 소중한 무언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일상이 조금 지루해진다 싶을 때 가끔 게획된 동선 밖으로 약간의 일탈을 감행한다. 매일같이 지나가는 출퇴근 길에 갑자기 가보지 않던 골목길로 한 번 들어가 보기도 하고, 여행지에서도 계획하지 않았던 곳을 일부러 돌아보기도 한다. 그곳에 내가 계획하지 않았던 놀라운 즐거움이 기다릴 거라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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