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을 가지고 하는 일들을 제외하고, 최근에 내가 재미를 붙인 일들을 나열해보자면 그다지 쓸데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최근에 피아노 학원을 등록하고 굳은 손가락을 애써 놀리며 영 엉망으로 곡을 하나씩 쳐 나가고 있는 중이다. 어린 시절에는 피아노를 치는 게 그렇게나 재미가 없어 연습할 때 마다 하나씩 칠해 없앨 수 있었던 갖가지 과일 친구들은 몰래몰래 한개 반씩, 두개씩 칠해서 없애버리곤 했었는데. 내가 원하는 곡을 고르고 그 곡을 하나씩 완성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을 하니 조금씩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그래서 재택근무를 하다가도 짬이 나면 피아노 앞에 앉아 또다시 서툴게 손가락을 놀려보곤 한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일이지만 내가 피아노를 치는 일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다. 이제 와서 피아니스트가 될 것도 아니고, 뭔가 작곡을 한다거나 합주를 하는 것도 아니고, 연주회를 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상으로 담아 누군가에게 보여줄 일도 없다. 그저 일주일 동안 성실하게 혹은 억지로 연습을 하고, 눈꼽만큼 나아진 실력을 선생님 앞에서 보일 뿐이다.
그런가하면 나는 종종 나 자신조차도 따라잡지 못하는 생각의 속도에 스스로 질식할 때가 있어 지친 머리를 환기하기 위해 레고를 조립하곤 한다. 내 기준으로 레고 조립이라는 것은 기분 전환도 되고, 다 조립한 결과물은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쓰니 제법 쓸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엄마는 내 집에 올 때마다 '이 먼지만 쌓이고 쓸데없는 것들 좀 치웠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말한다 엄마의 말마따나 나도 가끔은 레고 위의 먼지를 대충 털어내면서 만들 때 말고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래서 한 번은 늘어놨던 레고들을 죄다 모아서 옷장 구석으로 넣어버린 적도 있었다.
계절마다, 기분마다 집의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도 영 쓸모있는 일은 아니다. 창가에 놨던 책상을 낑낑거리며 벽 쪽으로 붙이고, 커튼을 바꿔서 달고, 새로운 책장을 들이고, 침대의 위치를 바꾸도, 침대 커버를 바꾸는 일 역시 들인 힘에 비해 어딘가에 가치가 있는 일은 아니다. 사실 쓸데를 따지고 보면 음악을 듣고, LP를 사모으고, 음악은 '그 때 그 갬성'으로 듣는거라며 카세트 테이프를 다시 사모으고 있는 것도 다 부질없는 일들이다.
지금 내가 좋아한다고 말한 일들은 과면 쓸데가 없어서 재미있는 것일까, 아니면 재미있는 일인데 쓸데가 없는 걸까? 레고를 조립하는 일도, 음악을 듣는 것도, 인테리어도 어쨌거나 밥벌이로 할 수도 있는 일들인데 아마 이런 일들을 밥벌이로 하게 된다면 아마 하기 싫어질 때가 있어도 멈출 수 없게 되니, 그전처럼 즐겁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니 쓸데가 없기 때문에 더 재밌다고 하는 게 맞을 지 모른다.
쓸데없는 일에 쓸 데가 생기면 그에 걸맞는 책임이 생긴다. 쓸데없는 일에는 책임이 생기지 않는다. 레고를 조립하다가 귀찮아서 그만둬도, 피아노를 치다가 곡이 너무 어려워 완성하는 것을 포기해도, 집 꾸미는 게 갑자기 귀찮아져서 더 이상 커튼을 바꾸지 않는다고 해도 나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다. 언제든 쉽게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게 쓸데없는 일의 장점이 아닐까? 쓸데있는 일들은 나에게 밥을 주지만, 쓸데없는 일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니 어떻게 보면 쓸데없는 일도 다 쓸 데가 있다고 할 수도 있겟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