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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생 Sep 02. 2024

미학의 감정

스탕달 신드롬의 경험에 관하여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증상이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예술적으로 큰 감명을 받았을 때의 충격으로 정신적 충동이나 분열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증상만 들으면 영화에만 나올 것 같고, 현실에는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꽤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 나는 이 정도의 경험을 해본 적 없지만, 그럼에도 예술적 감명을 받은 적이 있기에, 그것도 꽤 큰 감명을 받았던 적이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을 서술해보려 한다.


  그림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였다. 다빈치의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는 모나리자가 있고, 또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천지창조 정도가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둘의 그림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시대에 태어난 두 천재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면서 한창 친구와 둘 중 누가 더 천재인지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다빈치는 생각보다 노력으로 쌓아올린 실력이 많은데 반해, 미켈란젤로는 다분히 재능의 영역으로 역량을 발휘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심이 피카소로 연결됐다. 그림을 얕게나마 공부하며 또 천재라 불리는 피카소를 만나게 된 것이다. 피카소의 그림은 다소 특이한데, 큐비즘에 대한 설명을 보고 또 그 안에서 나만의 깨달음을 얻으면서 그림이 진심으로 재미있어졌다.


  음악을 계속 들으며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걸 '디깅'이라고 한다. 계속 땅을 파듯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음악으로 시작하게 된 디깅은 점점 암울해진다고 한다. 그 이유는 처음 경험한 음악만큼 좋은 느낌을 다시 받기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림도 비슷했다. 내 마음을 울리고 머리를 깨울 수 있는 그림을 찾고 싶었지만 단지 모네의 그림 몇 작품 이외에는 내 마음을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베르나르 뷔페'라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의 전시회가 열렸다.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전시회를 갔고 그 곳에서 스탕달 신드롬과 가장 근접한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이전에도 <까마귀가 나는 밀밭> 그림을 보고 참으로 큰 충격을 느꼈던 적이 있는데, 그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죽음> 시리즈 연작을 보게 되었는데 그 중에 <La mort 10> '죽음 10' 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해골 그림에 까마귀가 어깨와 바닥에 앉아있고, 또 검을 들고 있는데 심장이 드러나있는 그런 그림이다.


<La mort 10>


  그 충격을 지금 쉽게 설명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압도'. 그 그림 앞에서는 나도 마치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죽음 앞에서 인간이 한없이 약해지고 또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그림을 누구랑 보러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좋은 감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그림이 나에게 죽음이 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더 삶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 내가 저 그림에서 본 죽음은 아주 복잡한 것이었다. 또 한 편으로는 매우 단순하게 설명 가능한 것이다. 고작 26살의 나이로 죽음에 대해 논한다는건 다소 어리석은 짓일지 모른다. 또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 처럼 보여도, 그 누구도 죽음에 이르러서 조차 이에 관해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더욱 신비에 쌓여 있는 진실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삶에 그러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모든 것은 죽음에서 태어나 다시 죽음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감정도 어떤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우리는 존재한다고 느끼고, 또 존재하는 것에 존재를 찾지 않는다. 이건 우리 주변의 사물에게도 또 사람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난 그저 다가온 것을 충분히 느끼고 또 떠나간 것을 조금만 음미하려 한다. 가끔은 너무 가까이 느껴져 힘들때도 많지만, 거리를 두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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