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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생 Aug 12. 2024

우리 모두에겐 아름다움이 스며나오는 순간이 있다

피카소가 알려주는 세상을 바라보는 법

  사랑에 대해서 고민할 때, 나름의 답을 내렸던 적이 있다. 그게 지금은 사랑이 아니라는 반례를 찾았지만, 최소한 사랑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건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그건 바로 '아름다움' 이다. 아름다우면 당연히 사랑할 수 있지 그게 왜 사랑의 시작조건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할 수 있다. 이건 지극히 나만의 생각이고 또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이건 단지 애인을 지칭하는 사랑만이 아닌, 사랑 그 전체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피카소의 그림에는 '큐비즘'이라는 개념이 나오게 된다. 나는 아직 이것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할 능력이 없으므로 약간은 길게 설명해보겠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왜 이렇게 조각나있지?' 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자, 이제는 주사위의 전개도를 한 번보자. 우리는 전개를 보며 자연스레 육면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도 안다.


피카소의 그림과 육면체의 평면도


  피카소는 그림을 왜 조각나게 그렸을까. 그것은 바로 평면에서는 사물을 완전하게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퍼즐조각을 맞추듯 여러 방향에서 바라본 피사체를 한 프레임 안에 담은 것이다. 그것이 '큐비즘'의 매우 간단하고 급진적인 설명일듯 싶다. 그럼 왜 피카소는 큐비즘을 채택했을까. 이 이야기를 위해서는 내가 바라보는 미술사를 또 아주 간략하게 설명해야하지 싶다.


  아주 오래전의 미술은, 사물을 정확하게 구현하는데 집중했다. 마치 사진을 찍은듯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물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카메라의 발명 이후 그림은 점점 흐려지거나, 강조되거나, 파괴되었다. 전부 각자의 방식대로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다 점점 본질적인 측면을 강조하다 보니 지금의 현대미술까지 오게 된 것이다. 분명 옛날의 그림보다 현대미술이 훨씬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다시 그림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하나의 그림에 대해서 각자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그리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범위도 다 다르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난 여기에 좀 더 집중해서 생각했다. 또 단순하게 이야기해서, 그냥 사람마다 볼 수 있는 범위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건 단순히 수준의 차이일수도 있고, 또 우연의 차이일수도 있다.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아주 멋있는 해석을 내놓기도 하고, 또 심도깊은 공부를 한 사람은 다양한 작품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듯이 말이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도 비슷하다. 모두가 각자의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르다. 하지만 기준이 다를 뿐, 나름 일반화된 아름다움도 있다. 가령 인기 연예인을 보면 잘생겼다/예쁘다에 대해서 큰 이견이 없다. 단지 나는 누가 좀 더 좋아 정도의 구분만 있을 뿐이다. 좀 더 일반인으로 눈을 돌려보자. 정말 많은 이견이 나오게 된다. 여기서부터 아주 어려운 그림을 감상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여기 매우 평범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못생겼다, 누군가는 평범하다, 혹 누군가는 아주 아름답다고 평가한다. 누구의 평가가 맞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 사람에게 사랑에 빠질 확률이 높다. 대다수가 보지 못하는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봤다는건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그 사람의 세상에서는 아름다운 사람일 것이니까.


  단지 외모에만 국한되는 사실일까? 부모의 사랑은 어떤가. 내 자식만큼은 무한한 사랑을 주시는 분들이다. 하지만 그정도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항상 주고 있을까. 아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그들의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존재다. 이것이 나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본질이라 생각하고, 또 모든 사랑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아름다움을 본다면, 또 추한 면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가 말하고자 하는건 '얼마나 볼 수 있느냐'이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하나의 가정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겐 아름다운 부분이 있다'. 이 가정을 가지고 다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평소에 나쁘게 생각했던 사람, 싫어한 사람, 또 그냥 평범하게 지나쳤던 사람들을 더 자세히 보기로 했다. 그리고 알게되었다. 우리는 볼 수 있음에도 보지않고 피했으며, 최소한 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바닷마을 다이어리, 2015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을 행복하다고 여기셨어요."


  어차피 우리가 계속 보고 살아가야 할 세상 아닐까. 그럼 우리가 보는 세상이 어두운 것 보다는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게 좋지 않을까. 주변을 아름다운 것으로 채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가 아름다운 것을 보면 되는 것이다. 나는 내 아름다움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또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그렇게 온 세상을 아름답게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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