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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생 Aug 13. 2024

평생 당신을 사랑했다 말하기까지

그러기엔 우리의 사랑은 너무 짧으니까

몇 살이세요?
제 나이 41, 평생 당신을 사랑했소.



  비포 시리즈의 마지막인 비포 미드나잇에 나오는 대사이다. 어렴풋이 10년 주기로 나오던 시리즈의 끝맺음이 되는 영화였다. 둘은 이미 다른 사랑을 하고 자신이 그리고 있던 사랑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사실 이들의 사랑은 긴 연애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단지 열차 한 켠에서 만나 말을 건네고, 급박하게 목적지를 바꿔 하염없이 걸었을 뿐이다. 그리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을 뿐이다.


  이들은 그 안에서 어떤 대화를 그렇게 나눴던 것일까. 그리고 그게 얼마나 특별한 경험을 주었기에 이 남자의 사랑이 이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일까. 영화 안에서도 남자는 이 여자를 잊지 못해 글을 쓰고 작가가 된다. 그리고 잘 팔리는 작가가 되어 우연히 그 여자를 다시 마주치게 된다. 남자는 여자에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은 이내 사랑의 마음으로 다시 가득 채워진다. 아마도 미안해하는 모습과 합리적인 이유, 마지막으로 둘은 같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있어서일 것이다.


  사랑이 도대체 뭐길래 이 남자를 이렇게 절절하고 사연 많은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 여자를 다시 만났냐는 독자의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예전엔 그저 약속을 바람맞은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숨기는 거라 생각했다. 이제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아마 이 남자는 이 질문에 많은 생각을 하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어떤 대답이든, 나는 사랑하며 기다리고 있다'.


  둘은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시 만나고를 반복한다. 결국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에,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둘은 자신들의 사랑이란 보물을 해치지 않고 가만히 둔다. 서로 상처받지 않고 사랑만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이 둘의 사랑 방법이다. 그래서 다툼은 있어도 이별은 없었다. 좋아 보이는가? 나는 영화를 처음 보며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런 사랑은 싫더라. 마냥 기다리고 또 애써 서로 쿨한 척하는 사랑은 싫다. 나는 그냥 계속되는 사랑이고 싶다. 그런 건 없다고들 하지만 사랑이 끊어지는 건 너무 슬프지 않은가. 다들 그래서 이런 글을 읽고 있지 않을까.


  영원이란 단어가 가장 모순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원한 것은 없는데 영원이라는 단어는 왜 만들어지고 사용될까. 순간, 그 짧은 시간의 연속 안에선 영원할 수 있다. 사랑도 평화도, 또 영원도 가능하다. 모두가 모순적인 단어로 점칠된 세상에 살아도 한정된 시간 속에 의미가 생긴다. 짧은 사랑이라도 누군가에겐 영원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사랑이 영원하지 않았다고 말할 이유도 없다. 그래, 그냥 말장난이다.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으니까, 다음번엔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사랑하지 못한 건 누구의 탓이라기엔 너무 소중한 기억이니까. 그러니까 또 다음 사랑을 하고 싶어 지는 것이니까. 그러다 보면 한평생 당신을 사랑했다고 말하지 못하는 대신, 평생 당신을 기다려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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