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복장, ‘기본’이 많은 나라
어느 아침,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친 일본 엄마가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며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아이는 작은 가방을 메고, 머리는 단정하게 묶인 채 유치원 모자를 눌러쓴다. 그 모습 하나하나에 ‘정돈됨’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처음 일본에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었을 때, 나는 이 문화에 적응하느라 꽤 오래 걸렸다. 단순히 ‘아이를 데려다주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도시락 하나에도 ‘규칙’이 있다
도시락을 싸는 건 엄마들의 숙제 중 하나다.
하지만 단순한 ‘끼니’가 아니다.
색 구성, 영양 균형, 모양, 음식 크기까지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하는 기준이 있다.
붉은색(토마토, 햄), 노란색(계란), 초록색(브로콜리) 등
기본 3색 이상을 맞춰야 한다는 말에
처음엔 살짝 당황했다.
게다가 캐릭터 도시락을 만드는 ‘캐라벤(キャラ弁)’ 문화는
엄마들 사이의 암묵적 경쟁을 낳기도 했다.
한국처럼 급식이 대부분인 환경과는 다르게,
일본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아직도
많은 곳에서 도시락이 일상이다.
유니폼처럼 정해진 복장과 물품
‘아이에게 뭘 입히면 될까?’라는 질문은
일본 유치원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정해진 모자, 티셔츠, 바지, 실내화, 가방…
모든 게 ‘규정’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는 이름표를 하나하나 손바느질해 붙인다.
심지어 손수건, 수저, 양말에도 이름이 적혀야 한다.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지만,
사실상 엄마들의 꼼꼼함을 요구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많은 나라
매일 손수건 2장, 식사용 물수건, 도시락, 컵, 컵 주머니,
그리고 통학 가방을 직접 싸는 아이.
일본은 아이 스스로 준비하도록 가르치는 나라지만,
그 전 단계에서 엄마들은 많은 걸 세팅해 둬야 한다.
한국의 어린이집에서는 다양한 편의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반면,
일본은 ‘가정이 준비해야 할 부분’이 훨씬 많다.
그래서인지 ‘보육’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말이 어울릴 때가 많다.
그래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것들
가끔은 번거롭고, 때론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시스템도
시간이 지나면서 질서와 독립심을 키우는 방식이란 걸 알게 된다.
도시락을 열어보며 기뻐하는 아이,
실내화를 가지런히 놓고 들어가는 아이,
지정된 수건에 스스로 이름을 적어넣는 아이를 보며,
‘이 문화는 이런 식으로 아이를 키우는구나’ 하고 이해하게 된다.
일본의 육아는 조금 느리고, 불편하고, 꼼꼼하다.
하지만 그 안엔 ‘아이에게 스스로 하게 하는 법’을
천천히 가르치는 철학이 숨어 있다.
한국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그래서 더 배울 점도 많았다.
당장 실천은 어렵더라도,
내 아이에게도 그 정돈된 일상의 감각을
조금씩 흘려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