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의료 시스템, 보험 활용법, 병원에서 겪은 에피소드
일본 생활에서 가장 긴장됐던 순간 중 하나는, 몸이 아팠을 때였습니다.
약국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상태가 되자, 결국 병원을 찾게 됐죠.
그런데 병원에 가는 것 자체보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는 상황이
더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병원을 찾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진료과 선택’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내과·소아과 중심으로 묶여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일본은 세분화되어 있어서 어디를 가야 할지부터 막막하죠.
예를 들어 감기 증상이어도 ‘내과’, ‘이비인후과’, ‘호흡기내과’로 나뉘고,
피부에 뾰루지가 나도 ‘피부과’ 혹은 ‘알레르기과’로 갈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처음엔 동네 클리닉에 전화해서
“이 증상인데, 진료 가능한가요?”라고 확인부터 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병원이 예약제를 운영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외국인인데 병원비가 엄청 비싸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컸어요.
하지만 장기 체류자라면 ‘국민건강보험(国民健康保険)’에 가입할 수 있고,
이 경우 진료비의 30%만 부담하면 됩니다.
진료비가 5천 엔 나와도 본인 부담금은 1,500엔 정도인 셈이죠.
약국에서 받는 약값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따라서 일본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할 계획이라면
건강보험은 꼭 챙겨두는 게 좋습니다.
일본 병원은 ‘정숙’ 그 자체입니다.
대기실엔 TV도 없고, 간호사도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지 않아요.
접수 후에 받은 번호표만 조용히 들고 앉아 있으면
“○번 손님, 진료실로 오세요” 하고 전광판에 표시됩니다.
처음에는 이런 분위기가 낯설기도 했지만,
이내 차분한 병원 문화가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만, 의사와의 대화가 정말 짧습니다.
“어디 아프세요?” → “열은 없고요?” → “약 드릴게요.”
이런 식이라, 설명을 준비해가지 않으면 충분한 이야기를 못 나누고 나올 수 있어요.
진료가 끝나면 바로 약을 주는 것이 아니라,
처방전을 들고 근처 ‘조제약국(調剤薬局)’으로 가야 합니다.
약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보험이 적용되고,
거의 대부분의 경우 기다리는 시간이 짧습니다.
약을 받을 때는 복용 방법을 굉장히 꼼꼼하게 설명해줍니다.
일본어가 서툴면 영어로 된 설명서를 달라고 하면
대부분 친절하게 대응해 줍니다.
한 번은 감기 기운이 오래가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진단 후 “아직 감기는 아니지만 감기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하면서
감기약을 5일치 처방해 줬습니다.
한국식 기준으로는 “감기도 아닌데 왜 약을 줘?” 싶었지만,
이건 일본식 ‘선제 처방’이더라고요.
또 한 번은 발목이 접질려서 정형외과에 갔을 때,
진료 후 간호사가 작게 한마디 했습니다.
“불편하시면 언제든 또 오세요. 외국분들은 병원 찾는 것도 어려우시죠.”
그 말이 어찌나 고맙고 안도감이 들던지요.
언어도 다르고 시스템도 생소하지만,
결국 병원이라는 공간은 ‘회복’을 위한 곳이라는 점에서
어느 나라든 사람 사는 곳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두렵고 번거롭던 일본 병원 방문이
이제는 익숙해졌고,
무엇보다도 내 몸을 내가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여겨지게 되었어요.
일본에 계시다면, 혹은 유학이나 장기 체류를 준비 중이라면
꼭 미리 건강보험과 가까운 병원 위치를 확인해 두시길 추천드립니다.
몸이 아픈 날, 준비된 정보 하나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