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시간, 사내 분위기, 회식 문화
일본 회사에 대해 떠올리면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정시 출근, 칼퇴 없음, 상명하복.”
저도 처음엔 그런 이미지로만 일본 직장을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하고 보니,
그 틀이 맞기도 하고, 또 의외로 다르기도 하더라고요.
일본 회사의 출근 시간은 보통 오전 9시입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업무 시작 시간’일 뿐,
모든 직원들은 거의 8시 50분쯤이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10분 전 문화’라고 불리는 이 분위기,
처음엔 꽤 당황스러웠습니다.
지각을 피하려는 조심성이 아니라,
업무 준비를 미리 해놓고 정시에 바로 일 시작하려는
무언의 룰처럼 느껴졌어요.
누가 지시하지 않았는데, 다들 조용히 자리에 앉아
메일을 정리하거나 오늘 해야 할 일을 정돈하더라고요.
이게 자연스럽게 정착된 ‘집단의 질서’라는 걸 체감했죠.
일본에서도 ‘칼퇴’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먼저 퇴근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특히 팀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그 앞을 지나가며 “먼저 퇴근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데
은근한 용기가 필요하더라고요.
제가 있었던 팀은 비교적 수평적인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5시 59분’에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반대로, 일이 없어도 6시 30분 정도까지는 자리에 있는 경우가 많았고요.
그 시간을 다들 ‘정리 타임’이라고 부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이곤 했습니다.
요즘은 일본도 ‘노미니케이션(飲みニケーション, 회식)’ 문화가 줄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팀 내 정기 회식은 중요하게 여겨지고,
직접적으로 강요하지 않지만, 안 가면 소외되는 구조는 존재합니다.
저는 한번 회식을 거절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다음 날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몸이 안 좋아서…”라고 말하면 이해해주는 분위기지만,
‘가기 싫어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도 회식 자체는 꽤 격식 없고,
상사와 부하가 함께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는
일에선 보기 어려운 ‘사적인 연결’이 느껴졌습니다.
그게 또 일본식 조직문화의 매력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일본에서는 직급보다 이름에 ‘상’을 붙여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타나카 과장님’이 아니라 ‘타나카상’이죠.
이름+상 또는 성+상은 겉보기엔 평등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정중하고, 거리를 유지한 말투입니다.
회의 중에도 누구 하나 말을 끊지 않고,
상사의 의견에는 조심스럽게 맞장구를 치며 진행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처음엔 ‘너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갈등을 피하고 조율을 중시하는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한국식 속도감이나 효율과는 조금 다르게,
일본 회사는 조용하고 느리지만 질서 있게 하루를 엽니다.
출근은 일찍이지만, 급하지 않습니다.
퇴근은 늦어도 강요받지는 않지만, 공기가 무겁습니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과 자리를 인식하고,
그 질서에 조심스럽게 스며들어 갑니다.
이 문화가 정답은 아니지만,
한국과는 분명히 다른 ‘조직의 리듬’을
느끼고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한 포인트였습니다.
일본 회사에서 일한다는 건,
어쩌면 그 ‘공기’를 함께 읽는 능력을 갖추는 일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