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가 그때 내 말을 들어줬더라면 / 나종호 교수님> [심리학관]
사실 한국사회에서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데는 사회문화적, 구조적 요인이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정신과 의사로서 한 개인에게 위로를 건네는 내 책이 과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계속 자문하게 되었다.
수없이 많은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나의 약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자. 즉 나의 '취약성'을 솔직하게 드러내자는 것이었다. '취약성(vulnerability)'의 사전적 의미는 '타인으로부터 상처받거나 공격받기 쉬운 특성'이지만,
보다 최근에 와서는 취약성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 즉 '불확실성과 거절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진솔함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취약성을 드러내는 행위는 사람 간의 친밀함과 믿음을 더 굳건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나와 타인의 연결고리가 되기 때문이다. 취약성을 내보임으로써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고, 서로를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으며, 연결될 수 있다.
<만일 내가 그때 도움을 청했더라면>
불안감이 너무 심했을 때 내 심장이 과부하가 걸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처럼, 우울에 빠진 뇌는 과부하로 완전히 멈춰버린 기계와 같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나의 사회적 기능 또한 현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자취방에 홀로 누워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 내 머릿속에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왜 나는 그토록 힘들어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힘듦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았을까? 나중에 레지던트로 일하면서, 내가 전문가나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은 결국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용기를 내어 나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털어놓는 이유는, 비록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내 고백을 듣고서 누군가가 '정신과 의사조차 정신적인 문제로 저렇게 힘들었던 때가 있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으면 좋겠다.
나아가 '나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구나' '내가 약해서 우울한 게 아니구나' '나도 용기를 내봐야겠다'라고 마음먹을 수 있다면 내 고백에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을 주변에든
정신 건강 전문가에게든
털어놔도 된다는 것을
나 역시 늦게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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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그때 내 말을 잘 들어줬더라면>
If only I had listened to myself then
예일대 정신과 나종호 교수의 자기 공감 수업
"어떤 아픔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걸
너무 늦게야 배웠습니다."
* 저자 : 나종호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