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깍두기' 문화와 '휴거지·개근거지'의 등장

민중의 소리 / 심리학관

by 심리학관

우리 사회에는 오래된 전통으로 이어져 온 '깍두기' 문화가 있다. 아이들이 놀 때 짝이 맞지 않아도 함께 놀 수 있도록 하거나, 나이가 어려 놀이에 서툰 친구를 배려하며 함께 어울리는 문화였다. 이는 어려운 사람을 품고 정을 나누는 상생의 문화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 사이에서는 '휴거지', '개근거지' 같은 말이 등장했다. 가족과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 개근하는 학생, 혹은 LH 임대아파트에 사는 학생을 '거지'라는 단어와 결합해 부르는 것이다.


아이들이 '같이 노는 법'을 배워야 할 공간이,

이제는 '구분짓기'와 '비하하기'를

배우는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신자유주의 전면화와 학교 공동체의 해체>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신자유주의는 경쟁을 미덕으로 삼았다. "스스로 책임져라"라는 구호 아래, 공공의 역할은 축소되고 개인의 성취만이 강조되었다. 이 흐름은 학교에도 그대로 들어왔다. 초중고교의 '학급공동체'는 성적 중심의 서열로 재편되었고, 대학은 등록금과 스펙 경쟁의 장이 되었다. 학생회나 동아리는 축소되고, 대신 자격증·인턴·취업 동아리가 늘어났다. '좋은 사람'보다 '능력 있는 사람'이, '함께 잘하는 법'보다 '혼자 살아남는 법'이 더 중요해졌다. 공동체는 점점 개인에게는 '부담'이 되거나, '경쟁에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공동체 약화가 불러온 1020 세대 일상적 롤모델의 변화>

과거 1020 세대의 '일상적인' 롤모델은 공동체 내에 있었다. 대부분 존경받을 만한 선배나 동갑내기들이었다. 그러나 공동체가 점차 약화되면서, 1020 남성들의 롤모델은 유튜버나 인터넷 스트리머로, 인터넷 커뮤니티 내 익명의 누군가로 바뀌었다. 오프라인에서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고민상담 하듯, 온라인에서 내 글에 잘 호응해주는 사람에게 고민상담을 하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실제 '커뮤(인터넷 커뮤니티의 줄임말)로 사회생활 배운 신입'과 같은 내용의 후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리거나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환경은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청년들의 개인주의, 능력주의를 강화하고, 신념화하는 것에 일조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 시대의 불안과 청년세대의 분화>

지금의 '이대남(20대 남성)' 현상은 단순한 성별 갈등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구조적 산물이다. '공정'이라는 말은 점점 '경쟁의 정당화'로 바뀌었고, 공동체가 해체된 자리에는 개인의 불안만이 남았다.


이러한 불안의 시대 속에서 청년 여성들은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거대한 집단적 각성을 경험했다. 2016년부터 2018년 사이, 20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미투운동과 불법촬영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박근혜 탄핵 이후의 자신감은 곧 "스스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졌고, 청년 여성들은 거리에서, 광장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해석하는 새로운 언어와 이념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은 단순한 페미니즘 운동을 넘어, 새로운 세대 주체의 탄생을 의미했다


<80년대의 '시대정신'과 오늘의 청년세대>

반면, 현재의 청년 남성들은 같은 시기에 그런 집단적 경험을 공유하지 못했다. 1980년대 청년들은 대부분 대학에 진학하며 광주의 진실을 마주하고 전두환 정권에 맞서야 했다. 당시 대학 새내기들에게 민주화는 곧 자신의 존재 이유였고, 반독재는 세대 전체를 하나로 묶는 언어였다. 그 에너지는 전대협과 한총련으로 이어지며, 분단과 평화 문제까지 시대적 과제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이후 학생운동의 약화와 함께 청년세대는 세대를 초월한 연대의 경험을 잃어버렸다. '공통의 시대정신'이 사라지면서, 청년들은 더 이상 함께 분노하고 함께 행동할 명분을 찾기 어려워졌다.


<'함께 만든 세대경험'의 부재와 이대남 현상>

그 결과, 사회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가던 80년대의 청년들과 달리, 오늘의 청년 남성들은 변화 그 자체를 자신들의 기회를 빼앗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같은 세대의 여성들이 페미니즘 운동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갈 때, 남성들은 그 변화를 불안과 결핍의 감정으로 받아들였다. 청년층 전반의 보수화 흐름 속에서도 청년 여성들은 집단적 경험을 바탕으로 예외적인 진보 세력으로 남았지만, 청년 남성들은 점점 더 개인적 불안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게 되었다. 바로 이 '함께 만든 세대 경험'의 부재가 오늘날의 '이대남' 현상을 낳은 토양이 되었다.


<새로운 대안사회와 대안공동체가 필요한 때>

서부지법 사태와 같은 문제에서, 단기적으로는 규제와 제도적 개입이 필요하다. 혐오와 차별을 방치하면 사회는 돌이킬 수 없게 분열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 구조의 전환이다. 신자유주의가 만든 '야수 자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삶에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이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라,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최소한의 생존이 보장되고, 실패가 낙인이 되지 않아야 한다.


2010년대 초반에는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을 중심으로 당시 대학생 민생문제였던 반값등록금 문제로 싸워, 완전하지는 않지만 일정한 성과인 국가장학금을 얻어냈었다. 지금의 청년세대, 특히 2030 남성들에게는 기후위기, 자산 & 소득 불평등, 비정규직 & 일자리 문제 등 자신의 문제를 집단적 행동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이와 같은 경험이 절실하다. 이러한 경험을 만들 수 있는 대안공동체를 중심으로, 새로운 대안사회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극우담론에 휩쓸리지 않게 만드는 조건이 될뿐더러, 미래 한국사회를 이끌어 나갈 청년세대가 대안사회를 만들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자식세대, 후배세대들에게 어떠한 사회와 청년공동체를 남겨줄 것인가?



[이삼남 이야기]

사라져가는 ‘깍두기’ 문화,

청년들에게 남은 건 불안.

휴거지·개근거지 조롱 대신

공동체가 필요하다.

* 배득현 한국청년연대 사무처장

* 2025-10-16

*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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