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태어나겠다고 선택하지 않았다 / 심리학관
요즘은 과학과 종교를 대치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과학이 의지하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분석은 원래 신학이라는 맥락에서 신과 그 피조물인 이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된 것이었다.
초기의 과학 탐구는 신을 찬미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수단이었다. 신의 뜻에 따라 설계된 합리적인 우주 앞에서 뉴턴 같은 과학자들은 그저 신의언어를 해독할 뿐이었다. 목표는 우주 이면에 있는 지적인 천상의 계획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었다.
영어에서 무신론(atheism)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540년이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신론을 사술이나 주술과 동격으로 이해했다. 19세기 말에 이르자 많은 대학들이 과거에는 용인했던 종교적 정설과 관련된 사상을 몰아냈고, 종교적 논의를 주변으로 강등시켰다. 물론 종교사상가들과 신앙인들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믿음과 신앙의 실천은 점점 사적인 일이 되었다.
그러므로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는 무엇보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질문이다. 과학적 세계관이 퍼져나가고, 그로 인해 마법에서 깨어나면서 발명된 질문인 것이다. 오래전부터 인간을 비롯된 우주 전체에는 자명한 목적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생각이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잃어버린 것을 요청하는 것이 아주 중요해졌다. 그리고 한때 우리에게 있었던 것을 묘사하기 위한 표현이 발명되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의미'라는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가 실존적 위기를 겪게 된 모든 책임을 과학에 떠넘기지는 말자. 과학적 세계관이 인간의 의식에 진입한 이후, 누군가는 우리가 삶을 유의미한 어떤 것으로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을 발명해야 했다. 토머스 칼라일,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쇠렌 키르케고르는 서구 세계에서 인생의 의미에 대한 근대적인 탐색의 문을 여는 데 큰역할을 한 것 외에도 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독일 낭만주의다.
오늘날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인생의 중대사를 놓고 고심할 때 "네 심장을 따르렴" 하고 쉽게 이야기한다. 이 조언은 사실 대단히 낭만주의적인 발상이다. 낭만주의 이전에는 심장을 무시하고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낭만주의자들에게 심장을 따르는 것은 정서보다는 명령에 더 가까웠다. 낭만주의자들은 심장의 요구를 이행하기 위해 사회적 규범, 부모의 기대, 합리적 조언 등의 제약을 과감하게 무시했다.
낭만주의는 할리우드 영화와 숱한 팝송이 담고 있는 생각, 즉 사랑은 세상이 뒤집어지는 경험이어야 한다는 생각의 진원지였다. 진정한 사랑이 저기 어딘가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당신이 그 사람을 만나면 첫눈에 사랑을 느낄 것이고, 상대방은 당신의 심장이 선택한 사람이므로 영원히 서로 사랑하리라는 점은 아주 자명하다. 낭만주의는 사랑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조장했고, 이상향을 지상과제로 바꿔놓았다.
낭만주의의 이런 사고방식이 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어떤 일에도 만족하지 말아라" "당신의 진정한 소명을 찾아라". 익숙하게 들리지 않는가? 사랑에, 일에, 인생이나 행복에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광고, 영화, 노래, 자기계발서에서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이 명령에는, 우리 모두에게는 어딘가에, 어떤 식으로든, 내면의 소명이 있으므로,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낭만주의자들은 소명이라고 하는 기독교적인 개념(어떤 일을 하라는 신의 부름을 받았다는 식의)을 취해서 '신'의 자리를 '심장'으로 대체했다. 그래서 당신에게는 인생에서 꼭 해야만 하는 한가지 진정한 사명이 있는데, 그것은 신이 당신에게 내려준 것이 아니라, 당신 내면에 내내 숨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 생각은 자기계발서용 구호("당신의 진정한 소명을 찾아라") 같은 것이 되어 버렸지만, 안타깝게도 현실과는 별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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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태어나겠다고 선택하지 않았다
: 무엇이 인생을 의미있게 만드는가.
* 저자 : Frank Martela
(인생의 의미에 관한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핀란드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