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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리학관 Oct 31. 2022

[박정민의 수다다방] 아나톨의 작은 냄비

심리학관

지난주에 아주 예쁜 그림책을 발견했어요.


아나톨의 작은 냄비 / 출처 : 알라딘


<아나톨의 작은 냄비>

이자벨 카리에 작가님

권지현 번역가님

2014.07.27.


도대체 어디서 왜 온 건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머리위로 떨어진 냄비를

끌고 다녀야 하는 아나톨.


만나는 사람들에게 항상 상냥하게 대하고,

잘하는 것도 엄청 많은 멋진 아이이지만,

사람들은 왠지

아나톨이 돌돌돌 끌고 다니는

빨간 냄비만 이상하게 쳐다봅니다.


냄비를 끌고 다니는

아나톨도 힘듭니다.


자꾸 냄비가 여기저기에 걸려서

앞으로 가기가 어렵거든요.


불편감이 쌓이다보니

화도 내고

나쁜 말도 하고

친구들과 다투기도 하고

아예 숨어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나톨은

냄비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냄비에 대해 투덜거리고

힘들어하고 소리지르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키우는 데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게 되구요.


"사람들은 이제 아나톨을

많이 칭찬해주지만,

냄비는 여전히 달그락거리면서

아나톨에게 매달려 있고,

아나톨은 예전과 똑같은

아나톨이랍니다"라는 말로

그림책은 끝맺습니다.


이자벨 카리에 작가님은

다운증후군을 가진

딸을 키우고 계신다고 해요.


"장애"라는 것을

빨간 냄비로 표현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해주셨네요.


********************************


(작가의 말)

냄비에는 원래 물이나 수프, 강낭콩을 넣습니다.

때로는 냄비에 꽃을 꽂을 수도 있고,

냄비 위에 걸터앉거나

냄비를 모자처럼 머리에 쓸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제 이야기에 등장하는 냄비에는

수프도 강낭콩도 담기지 않았습니다.


냄비 안에는 그보다

훨씬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들어 있지요.


냄비가 워낙 크다 보니

사람들 눈에는 냄비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나톨은 많이 힘듭니다.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냄비가 있습니다.

큰 냄비, 작은 냄비, 거추장스러운 냄비…….

어쩌면 우리도 그런 냄비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심리검사 해석을 할 때나,

상담과 코칭을 할 때면

"선생님, 제가 혹시 비정상인가요?"

"제가 정상인 건 맞을까요?"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보시는 분들을

자주 뵙곤 합니다.


정상과 비정상.

단 하나의 명확한 기준으로

칼같이 나눌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자벨 작가님 말씀대로

우리는 누구나

다양한 색깔과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크기의 냄비를

돌돌돌 끌고 다니고 있으니까요.


<냄비>

불편하고 걸리적거리고

버리고 싶지만

내가 가지고 태어났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특성


문화인류학자 그린커 박사님은

아예 "정상은 없다"라고 이야기하시더라구요.


정상은 없다 / 출처 : 알라딘


*********************


애초에 누구도 정상이 아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사회에 누구를 받아들이고

누구를 거부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정상'이라는 개념을 썼으며,


이제 정상이라는 것이

유해한 허구임을 깨달을 때다.

(정상은 없다 / P16)


*********************


나는 '장애'가 아닌 '질환'이라는 용어를 쓴다.

우선 '장애'는 정상적인 것이 있다고 암시하는데,

사실 우리는 정상적인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리고, '장애'는 신체 또는 정신의 정상적이고

체계적인 기능을 저해하는

질병을 암시하는 것과 달리,

'질환'은 아픔이나 손상의 경험을 암시한다.


'장애'는 우리의 관심을

생물학적 과정으로 이끄는 반면,

'질환'은 실제 삶의 양상을 조명한다.

(정상은 없다 / p31)


*********************


예전에 독자님과 함께 읽어본

히구치 나오미님의 "오작동하는 뇌"가 생각났습니다.


https://brunch.co.kr/@smallwave5/202


레비소체 인지저하증 진단을 받으신

(우리가 흔히

'어리석을 치 + 어리석을 매'라는

단어로 가치비하하는) 작가님은

하루하루 변화해가는 "나"에 대한

대처법을 익히고 있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불편한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버리거나 피하고만 싶었던

빨간 냄비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는

아나톨과 같이 말이지요.


*************


이제 저는

이따금씩

오작동하는 제 뇌와

어떻게 함께 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고물이 된 제 몸을

충분히 이해하고

정교하게 다루면서


어려움을 마주할 때마다

대처법을 차례차례

마련하고 있지요.


그렇게 병이 걸리기 전과

다른 ‘새로운 나’로서

힘껏 살아가고 있습니다.


출처 : 오작동하는 뇌


*************


내가 가지고 있는

아나톨의 빨간 냄비는

어떤 것인지,


그 냄비를 잘 다루기 위해

내가 더 공부하고 연습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놈의 냄비" 때문에

나 자신을 미워하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멋진 보물을 못 보고 지나치는 일이 없기를.


또, 나와 다른 냄비를 끌고 다니는

사람을 보았을 때,

무례하게 손가락질하거나 비난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를.


오늘도 바래봅니다.


[COZY SUDA 박정민 대표]


* 박정민 코치 소개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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