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피하던 사람이 겨울을 걷게 된 이유

효율을 내려놓자 비로소 보인 풍경

by 조아

나는 오랫동안 겨울 여행을 피했다. 정확히 말하면, 눈을 싫어했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눈이 내리면 몸 어딘가의 말초신경이 먼저 반응했다. 쌓이기 전에 치워야 할 것 같았고, 통제하지 않으면 일상이 흐트러질 것만 같았다.


나에게 겨울은 낭만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변수’였다. 눈이 내리면 일정은 지연되고, 길은 미끄러워지고, 사진은 흐려지고, 몸은 쉽게 지친다. 여행에서도 효율을 따지던 나에게 겨울은 계획을 방해하는 계절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따뜻한 계절을 골랐다.


이동이 편하고, 동선이 단순하며, 검색하면 이미 수많은 후기가 정리된 곳들. 실패하지 않는 여행이 중요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철저히 고른 여행일수록 기억은 비슷하게 겹쳐졌다. 잘 정리된 골목, 예상 가능한 맛, 후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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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리지 않았지만, 깊지도 않았다. 그러다 특별한 기대 없이 떠난 여행에서 문득 홋카이도의 겨울을 마주했다. 공항 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먼저 닿았다. 숨이 얕아질 만큼 선명한 온도였다. 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시야를 가리는 대신, 소리를 흡수하고 있었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졌고, 서두르는 일은 그 순간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조차 ‘빨리, 많이, 정확하게’를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 위를 걷는 일은 효율적이지 않았다. 쌓인 눈길은 언제 미끄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마음은 이전보다 가벼웠다.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멈출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여행에서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보다 얼마나 조용했는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눈 내린 밤거리의 고요함. 말을 줄이게 만드는 차가운 공기. 발자국 소리마저 삼켜 버리던 풍경. 눈을 극도로 싫어하던 사람이 겨울 속에서 멈추는 법을 배운 날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날이 내가 처음으로 진짜 쉬었던 여행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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