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니 비극은 풍경이 되었다

눈을 향한 나의 시선이 바뀐 순간

by 조아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이다. 익숙한 것은 쉽게 받아들이지만, 낯선 것에는 관심은 두어도 선뜻 마음을 주지 않는다. 계절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계절은 없었다. 다만 ‘특정한 날씨’를 싫어했다.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공통점은 습도였다. 비가 오는 날 특유의 꿉꿉함, 장마철 숨이 막힐 듯한 공기. 그 눅진한 공기는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눈 오는 날은 조금 달랐다. 습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군 복무 시절의 강렬한 경험이 눈을 낭만이 아닌 ‘위협’으로 각인시켰다.


내가 복무했던 곳은 조금만 눈이 쌓여도 차량 진입이 어려워 고립되기 쉬운 지역이었다. 눈 예보가 뜨는 날은 곧 비상대기였다. 눈이 내리면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치워야 했다. 그것도 목숨을 걸고. 한 번은 2km가 넘는 구간을 혼자 재설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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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냈다고 생각하고 뒤를 돌아본 순간, 내가 치운 만큼의 눈이 그대로 다시 쌓여 있는 장면을 보고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다시 삽을 들었다. 경기도 북부의 다설지에서 눈은 낭만의 대상이 아니었다. 생존의 문제였다.


남쪽 출신 동기들은 눈 오는 날을 좋아했다. “눈 온다!”며 들뜬 목소리를 냈다. 나는 달랐다. 눈을 ‘쓰레기’라고 불렀다. “쓰레기 치우러 가자.” 습관처럼 내뱉던 그 말에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 눈만 아니었다면 편하게 쉴 수 있었을 텐데.


눈은 휴식을 방해하는 존재였고, 당시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였다. 멀리서 보면 하얀 눈을 맞으며 재설하는 장면이었겠지만, 가까이서 보면 욕을 중얼거리며 삽질하는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을 조금은 이해했다.


전역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서울에서 보낸 6년 동안에도 눈은 나를 괴롭혔다. 강남역을 구두만 신고 걷다가 수없이 미끄러졌고, 눈 오는 날이면 대중교통이 끊길까 봐 예보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렇게 겨울이 싫어졌다. 정확히는 눈이 싫어졌다.


눈이 내리면 감상하는 대신 치워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눈이 많이 오는 지역으로 여행을 간다는 발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에게 그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 믿음이 깨진 곳이 바로 홋카이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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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방문은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다. 운 좋게도 눈을 만났다. 길 양옆에 성인 키를 훌쩍 넘는 눈벽이 쌓여 있었고, 그 양만으로도 이곳의 겨울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아사히카와로 향하는 JR 열차 안에서 본 풍경은 그 모든 생각을 단번에 뒤집어 놓았다.


창밖으로 펼쳐진 설국.


끝없이 이어지는 하얀 평원.


그 위로 조용히 내려앉는 눈.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 눈은 더 이상 치워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고, 고립의 공포가 아닌 평온의 색으로 다가왔다. 같은 눈인데도, 맥락이 바뀌자 의미가 달라졌다. JR 창가에서 바라보던 그 장면은 아직도 내 안에 저장되어 있다.


내가 다시 이곳을 찾게 만드는 이유, 설국 홋카이도에 다시 서고 싶게 만드는 목적. 눈을 쓰레기라 부르던 사람이, 이제는 눈을 보러 떠난다. 그 변화가 내 여행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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