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 속 경주에서 확인한 함께 달리는 기쁨
지난 토요일,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던 경주에서 부단히런 멤버들과 함께 달렸다. 화려한 벚꽃 아래 모여 같은 코스를 달렸다는 사실도 특별했지만, 내게는 그것이 단순히 하나의 마라톤 대회에 단체로 참가한 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온라인에서만 이어 오던 인연이 실제 얼굴과 목소리를 만나며, 서로의 내적 친밀도가 한층 깊어지는 시간에 가까웠다.
그 확산의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마라톤과 모든 행사가 끝난 뒤, 나는 오히려 조금 공허한 마음을 느꼈다. 주말 동안 너무 많은 인사이트와 행복이 한꺼번에 밀려와서였을까. 신기하게도 너무 기분이 좋았고, 힘들지도 피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몸은 정직했다. 3시간 넘게 비를 맞으며 뛰고 움직였고, 그 전까지도 닷새 정도 하루 4시간 남짓한 수면으로 버텼으니 결국 몸살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푹 쉬었다. 과일을 먹으며 회복의 시간을 보냈고, 창밖을 바라볼 때마다 경주에서의 시간이 떠올라 말없이 웃곤 했다.
이번 경주벚꽃마라톤을 경험하면서 다시 확인한 것이 있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가진 재능으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기쁨이라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서 하는 일은 힘듦과 피곤함조차 잊게 만드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역할이나 책임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순전하게 좋아서 하는 일이 나의 업이 된다면 나는 얼마나 충만한 하루를 살게 될까. 월요일 아침이 되어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복귀하고 다시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오면서도, 내 마음 한편에서는 계속 같은 질문이 맴돌았다.
나는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일까?
어떤 일이 나를 이토록 가슴 뛰게 만드는 것일까?
이번 경주벚꽃마라톤은 부단히런의 봄 소풍이자 런트립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연마해 온 Zone 2 달리기 훈련의 성과를 실전에서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늘 8분 30초에서 9분 페이스로 천천히 달리며, 이런 훈련이 과연 실제 대회에서도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스스로도 반신반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내 의구심과는 달랐다. Zone 2 훈련은 분명한 성과를 보여 주었다. 단 한 달 정도 훈련했을 뿐인데 10km를 5분 45초 페이스로 달려 57분 만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기록도 의미 있었지만, 더 놀라운 것은 숨이 차지 않았고 레이스 뒤에도 예전처럼 큰 피로가 밀려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번 주 영남일보 하프마라톤 대회가 예정되어 있고, 비를 오래 맞은 탓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 기브 앤 레이스는 처음으로 DNS를 선택했다. 하지만 몸 상태만 괜찮았다면, 연일 전력으로 달렸더라도 큰 무리는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몸의 바탕이 달라졌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이것이 Zone 2 달리기 훈련의 성과임을 직감했고, 그 기쁨을 부단히런 멤버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우리 모임 안에는 경쟁이나 기록 달성만을 위해 달리는 사람보다, 달리기 그 자체를 삶 속에 들이고 싶은 사람이 더 많다. 그렇기에 오히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에게야말로 이런 훈련이 더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비 오는 날 열리는 마라톤 대회는 참가율이 낮다. 안 그래도 힘든데 굳이 비까지 맞아 가며 달리고 싶지 않은 마음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날의 우리는 달랐다. 누구 하나 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장대비 속에서도 경주의 보석 같은 보문호를 달렸고, 벚꽃 아래서 함께 이야기를 만들고 나누었다.
그래서 이번 경주는 단순히 기록을 남긴 하루가 아니었다. 함께 달리는 기쁨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일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사람을 얼마나 충만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천천히 쌓아 온 훈련이 결국 몸과 마음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확인한 하루였다.
비는 분명 거셌지만, 그날의 기억은 이상할 만큼 환하고 따뜻하다. 아마도 우리는 비를 맞으며 달린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조금 더 가까이 마주하며 함께 봄을 통과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