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줄일수록 오래 달릴 수 있는 이유
마라톤을 준비하다 보면 한 가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분명 몸은 더 힘들어지고 있는데, 어떤 순간에는 오히려 달리기가 더 단순해진다는 느낌이다.
특히 30km 이후.
많은 러너들이 이 구간을 고비라고 말한다. 체력적인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그 지점에 서 보면 조금 다른 감각이 느껴진다.
힘든 것은 맞지만, 동시에 ‘생각이 많아질수록 더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페이스를 계산하고, 남은 거리를 따져 보고, 지금의 상태를 평가하는 순간 몸은 더 무거워지고 호흡은 더 가빠진다.
반대로 아무 생각 없이 발의 감각과 호흡에만 집중할 때는 이상하게도 그 고통이 조금은 단순해진다.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침묵은 신의 언어,
그 외 모든 것은 형편없는 번역일 뿐이다.”
이 문장은 단순한 종교적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떤 상태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짚어낸 말에 가깝다.
달리기에서 ‘침묵’은 말 그대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필요 없는 해석을 줄이고, 몸의 리듬에 맡기는 상태에 가깝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계속해서 선택을 하게 된다. 조금 더 빨리 갈지, 속도를 줄일지, 멈출지, 계속 갈지.
이 선택들은 모두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리고 마라톤 후반에는 그 에너지가 이미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더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횟수를 줄이는 것이다. 그 상태가 바로 침묵에 가깝다.
Zone 2 달리기를 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심박수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페이스를 조절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조용히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심박수는 올라가고,
조금이라도 과하게 개입하면 리듬이 깨진다.
결국 남는 것은 하나다.
과하게 판단하지 않고, 흐름을 유지하는 것.
이것은 감정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감정을 느끼면 그것을 설명하려 한다.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끊임없이 해석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감정은 설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설명하려 할수록 더 복잡해진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공간이다. 감정이 지나갈 수 있도록 두는 여유, 즉 침묵이다.
침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과도한 개입을 멈추는 상태다.
달리기에서도, 감정에서도,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서도
우리는 너무 많은 해석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해석이 때로는 우리를 더 지치게 만든다.
어쩌면 끝까지 가는 사람의 차이는 더 강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덜 개입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생각을 줄이고, 판단을 줄이고, 지금의 리듬을 유지하는 사람.
그 사람은 결국 끝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다. 침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우리를 끝까지 데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