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 대한 자격지심
커버 그림 출처 - <다음 웹툰 '닭은 위대하다'>
남편은 나름 성공한 인생이다.
대한민국에서 소위 일류대라 꼽는 대학에서 석사까지 땄다. 공대생이면서 사회과학에 관심을 두고 동아리, 학생회 활동으로 대학생활을 알차게 하곤, 군대 대신 병역특례로 회사생활을 하고 또 바로 취업했다. 물론 그의 동기들보다 급여가 낮은 회사라지만, 빚 없이 그 명의의 30평대 아파트와 2000cc급 자차가 있다. 게다가 나름 이 지역에서 오랜 기간 군소정당을 후원하며 시민단체와 연을 맺고, 점점 더 참여하는 활동을 넓히더니 시민단체 중 한 곳에 이사직까지 맡게 되었다. 가정생활도 집안일 착착하는 아내와 딸 하나 아들 하나 있으니 말 그대로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이라 할 만하다.
그에 비해 난 실패한 인생이다.
지방대 겨우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도 실패. 공모전도 줄줄이 불합. 하던 장사도 10년도 못 견디고 접고. 새로운 사업자로 등록은 해놨으나 신통찮고, 주업은 주부로 설거지 청소 빨래 널고 개기에 메여있다. 아이들이라도 잘 키우는 게 내 인생의 성공이려나 싶어 책 읽고 유튜브 보며 아이들을 백업해주려 하지만 10살 즈음되니 다들 학원 다녀오자마자 친구들과 노느라 바빠져 나와 같이 있을 시간조차 별로 없다.
그래도 아직은 내게 기회가 남아있으리라 믿고 있지만.
마흔이 넘어서도 여전히 부서져 조각조각 나있는 날 보면 잘 될 거라고 응원하기보단 주눅 들고 슬퍼진다.
생각해보면 그저 허랑방탕하게 허투루 산 것 같지도 않은데. 그래도 열심히 살지 않았으니 평일 낮에도 이렇게 하릴없이 걷고 있는 거겠지.
길에서 마주치는 10대, 20대 아이들을 보면 난 그때의 나이였을 땐 왜 이런 봄볕을 만끽하지 못했나, 어두운 집에 들어가 눕기 바빴나 너무 아쉬워져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그 시절 난 나 자신을 지독히도 미워했었지. 찬란한 날씨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우중충한 인간으로만 날 여겼으니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 냈다. 너무 뚱뚱하고 못생겼고 지방대를 다니는 루저라고 나 스스로 날 할퀴고 혼자 상처에 아파했더랬다.
봄볕 한 줌 받지 못한 내 청춘이 안쓰럽다.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 숨는 것을 내 우울의 치유이자 해결책으로 여겼던 내 어리석음에 참담해진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은 후회하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내 인생이 가여워서 이토록 가슴을 쥐어뜯으며 후회한다.
It is WHAT it is. 다 그런 거지 뭐.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확신했었으니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젠 그만 가여워하는 걸 멈추고, 그저 인정해주는 건 어떨까.
나는 과연 쓸모 있는 인간인가.
지금은 이렇더라도 후에는 쓸모가 있어질까.
내가 지금 가치 없는 인간일지라도,
나보다 가치 있는 인간들에게 열등감에 휩싸여나 자신조차 날 소중히 여기지 않는 순간에도
난 늘 내가 잘 되길 응원했다.
날 사랑하지 못하고 누구보다 날 미워하는 순간조차 내가 애틋했고 아까웠다.
아마 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날 사랑하고 아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도 따스운 햇살과 보드라운 봄바람에 내가 어울리지 않아서.
누추한 나와는 달리 세상이 너무 반짝여서.
실장님이 된 신랑이 출근하는 모습에 자격지심만 커질 뿐이었다.